양평의 송혜교 님_#3 아름다운 동네에 산다는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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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 님

작가 |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 숲속의 N잡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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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 동네에 산다는 사치

시골에 산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어휴, 그래도 20대에 서울에서 살아야 경험의 폭이 넓어지지!"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로 응수하곤 한다. 내게 원할 때마다 영화관이나 마트에 갈 수 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원할 때마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밤 11시에 택배를 시키면 다음 날 아침 7시에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다거나, 아무 때나 뮤지컬을 보러 갈 수 있는 삶을 포기했다. 대신 사람보다 나무가 훨씬 많은 곳에서 유유자적 거닐 수 있고, 어디로 눈을 돌려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에서 사는 삶을 택했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요즘 청춘의 기본값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유명해졌다. 나 역시 잠시나마 도시에 살 때 그 우울의 정서를 있는 대로 죄다 흡수하고 골골댔었다. 나에게는 도시의 편리함보다 삭막함이 더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왜 깡시골에 틀어박혀 젊음을 허비하냐고 묻는다면, '행복이 기본값인' 청춘으로 살고 싶어서라고 답하겠다.


친구로부터 '진짜 커피와 가짜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회사에 출근한 날, 생존을 위해 카페인을 수혈하듯 급하게 빨아 마시는 커피는 가짜 커피다. 반면 주말이나 휴일에 멋진 잔에 담아 느긋하게 향과 맛을 음미하며, 2시간에 걸쳐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진짜 커피다. 똑같은 커피 한 잔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을 보내며 마실 수 있어야만 비로소 진짜가 되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짐했다. 언제든 진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삶을 살겠다고. 비록 큰돈을 벌거나 으리으리한 집을 짓지는 못하더라도, 차 한 잔 끓여 느긋하게 마당을 거니는 여유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삼겠다고.


날이 좋을 때면 가족들과 함께 마당에 나가 커피나 차, 간단한 디저트를 나눠 먹는다. 이때는 강아지들도 함께 나와 마당을 산책하는데, 잔디 사이사이에 뿌려둔 간식을 찾아 먹는 노즈 워킹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마당에 넘치도록 핀 꽃 몇 줄기를 잘라 화병에 꽂아두는 엄마 덕분에 눈이 더 즐겁다. 음악을 틀지 않아도 새소리가 들리고, TV를 켜지 않아도 멋진 풍경이 보이는 마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자면 시골에 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양평에 놀러 오겠다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에이, 진짜 할 거 없는데!" 이 말은 사실이다. 우리 동네에는 관광객이 할만한 게 거의 없다. 기껏해야 드라이브를 하거나 한강을 구경하는 것 정도니까. 하지만 팔불출 같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이런 말을 이어 붙이고 만다. "그래도 예뻐요, 고즈넉하고."


'우리 동네'라는 말이 얼마나 막연하고 따뜻한지에 관해 생각해 본다. 동네라는 건 참 넓은 영역이고 그 안에 수백수천 명이 살 텐데도, 사람들은 동네 앞에 '우리'라는 관형어를 써서 친근감 있게 표현한다. 동네까지도 '우리'의 영역으로 집어넣으며 살갑게 표현하는 것은 집을 넘어 동네를 사랑하는 일의 첫걸음이다.


아름다운 동네에 산다는 건 정말 사치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그 풍경 속에 사는 것'이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멋진 풍경을 보며 감탄하는 순간들을 여행이 아닌 일상의 몫으로 가져왔으니까. 그로 인해 내 삶은 평일에도, 주말에도, 어떤 계절 속에서도 언제나 여행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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