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노해원님_#1.어쩌면 우린 누군가의 큰 그림속에서 시작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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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에서 귀촌생활 중ㅣ세 아이의 엄마ㅣ여자 축구팀 '반반FC'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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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린 누군가의 큰 그림속에서 시작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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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나는 휴학을 하고 일 년 정도 고창에서 농악 전수생으로 지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워낙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혹은 워낙 내 멋대로 살아온 탓에) 주변에서도 딱히 말릴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의외의 사람이 나를 붙잡았는데 바로 당시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 H였다.


우리는 오래된 부모님 모임에서 만나 부모님 몰래(부모님 빼고 다 알게) 사귀고 있던 3년 차 연인이었다. 다정한 듯 무심한 충청도 사람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가진 그는 나에게 지금까지 그렇게 단호하게 'NO'를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예상 밖의 그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휴학의 안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이상하게 '장거리 연애도 힘들고...'라고 속삭인 말이 '너와 절대 떨어져 지낼 수 없어' 같은 영화 대사처럼 들리는 바람에 더 고민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휴학을 하지 않은 그 한 해 사이 누군가 이미 정해 두기라도 한 것처럼 결혼, 출산, 졸업과 귀촌까지의 일들이 이뤄졌다.

 

그렇게 나는 스물셋에 엄마가 됐다. 그 당시엔 내가 그렇게나 어리다고 실감하지 못했는데 지금 그때 사진을 들춰 보면 왜 주변에서 '애가 애를 낳았네'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종종 낯설다. 올해로 10년 차. 그 사이 두 명의 꼬박이가 더 태어나 삼 형제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내가 놀랍다. '내가 애 셋 엄마라고? 허, 참...'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변함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다섯 식구 삼시세끼 굶기지 않고 무사히 생명 유지하고 살아온 사실만으로 뿌듯하다.


그동안 내 삶의 많은 선택지 속에서 나름 주도권을 갖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역시도 어쩌면 이미 누군가의 큰 그림 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선택을 했느냐보다 어떤 선택을 했든지 간에 그 속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의 육아는 과도한 선택의 연속이다. 출산 방식이나, 유아용품, 음식, 훈육 방법부터 수면 습관까지. 오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과도한 정보들을 전해 듣고 나면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지고 불안한 마음만 커진다.


처음 큰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규칙적인 수유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신생아여도 시도 때도 없이 주지 말고 2시간에 한 번씩 먹이면서 규칙을 만들어 가야 나중에 편하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당시 모유 양이 많지 않았음에도 어떻게든 2시간에 규칙을 만들어 보려고 반나절을 고생했던 적이 있다. 젖을 물리면 금방 달래질 것을 안고 업고 둥개둥개 하며 달래느라 팔이 떨어질 것 같아 반나절 만에 포기했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원래 하던 대로 아이가 울거나 힘들어할 때 젖을 물렸다. 한 시간에 한 번이 됐다가 두 시간에 한 번이 됐다가 어느 날은 서너 시간에 한 번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육아도 그냥 각자 취향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러니까 인생에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모두가 정답이라 말하는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제각각 자기 취향에 맞춰 살아가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좋은 선택도 뒤돌아 후회하는 선택도 결국엔 모두 고유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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