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의 시골친구_박성연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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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 with 에디터 무해

금산간디학교 고등교사 | 들락날락 협동조합 이사

인스타그램 @psy8440


문자도 전화도 잘 닿지 않는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다. 인터뷰 당일까지도 그를 과연 만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때 만남 장소에 부랴부랴 들어온 한 사람. 방금까지 학생들과 M.T를 다녀왔단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이야기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또 누군가 그를 데려간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도 순탄친 않았지만 어찌어찌 인터뷰를 마쳤다. 그를 직접 마주하고야 왜 그토록 연락되지 않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역과 녹아들어 한 몸이 된 사람. 지역과 공동체를 위해 움직이는 그의 바쁨이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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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엔 어떻게 내려오셨나요

완전 충동적이었어요. ‘내가 애를 낳고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민이 시작된 시기였는데요,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모습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대안 교육을 알게 됐어요. 간디학교에서 삶의 전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양 강좌를 진행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확 끌렸죠. 강의를 들으러 6개월간 2주마다 금산에 내려왔어요. 그때 아이가 두세 달밖에 안 됐는데 말이에요. 처음에는 혼자 오다가 아이들도 데리고 같이 갔어요. 나중에 남편한테도 ‘우리 같이 가도 될 것 같아’라고 말을 했죠. 남편이 여기 와보니까 ‘여기 살아도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했고요.

 

그 후 바로 정착하신 건가요

교육이 끝나고 이곳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빈집이 나왔는데 들어올 생각 없냐고요. 그렇게  정착한 마을에 우연하게도 제 또래 엄마들이 많았어요. 공동 육아 비슷하게 마을 사람들과 아기들 같이 키우면서 지냈어요. 서로 돌봐주고 밥 먹여주고. 시골에 와서 나도 정말 행복한데 이건 아이한테도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는 시골로 와서 잘 적응했나요

자연이 놀이터다 보니 자연과 노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요. 아마 도시에 살았으면 일부러 주말에 자연 놀이체험 같은 걸 찾아다녔을 거예요. 여기는 지천이 자연이니까 곤충 보면서 다 관찰하니 동물도감이 따로 필요 없죠. 아이들이 청소년기 지나면 도시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바뀌긴 하지만 저는 어릴 때의 기억이 살아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게 생명에 대한 부분일 수도 있고요. 저희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인데, 사춘기도 아이가 가족이랑 단절돼서 방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간디학교 졸업생 형 누나들, 그리고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무척 건강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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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 때와 또 어떤 점이 달랐나요
도시에서는 회사나 조직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많고 성과를 내야 하는 부분이 스트레스였죠. 또 모두 그런 방식으로 일하다 보니 서로에게 주는 스트레스도 굉장히 높고요. 일하고 돈 버는 개념 자체가 내가 사는 집의 평수를 늘리는 것 외에 인간다운 의미가 별로 없었어요. 도시 안에서는 그런 의미를 찾기가 너무 어려우니까 잘못하면 외로움과 우울감에 고립되기도 해요. 정말 자기다운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에는 도시는 너무 바쁘고 빨라요. 상대적으로 지역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매우 많죠.


지역에 사는 장점을 더 말해주세요

지역 어르신들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많이 들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일하다 보면 굉장히 관계 지향적으로 움직여요. 아는 사람이 한둘씩 생기면 이런 저런 도움을 지역 사람들에게 받을 때가 생기는데, 이때 삶이 외롭지 않고 도리어 풍요로워지는 기분을 느끼면 지역을 쉽게 떠나려고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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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사도 하시면서 활동가도 병행하시는 거죠

학교 입장에서는 ‘교사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의문들도 드실 거고, 지역 활동하면 ‘그것만 하지 뭘 교사까지 하냐’ 이렇게 많이 이야기하세요. 저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저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고 그렇게 사는 게 저 같아요. 다양한 역할과 일 속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기회를 만드는 모습이요. 그래서 교육자나 지역 활동가 이 두 가지 정체성으로 저를 규정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가 처음에 대안학교 교사로 여기 오지도 않았고 애초에 저는 재미있게 저다운, 제게 잘 어울리는 삶을 찾아서 왔던 거라서요.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청년 그룹하고 소통하면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에너지나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려는 것,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것 같고 저도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활동가 일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처음에는 졸업생들에게 ‘금산에서 하고 싶은 거 하자’는 메시지로 시작했어요. 애지중지 키운 제자들이 서울이나 도시에 가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회의 부속품처럼 되는 게 너무 속상했거든요. 대안학교에서 정말 삶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하면서 많은 걸 배웠는데 그게 사회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는 거예요. 대학을 졸업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나중엔 우리 애들만 문제가 아니고 일반적인 청년들의 문제라는 걸 알았어요.

제가 서울에서 살다가 31살에 귀촌했거든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들었는데, 도시보다는 지역의 마을 공동체에서 가치 지향적인 삶을 나누면서 사는 삶이 멋져 보여서 이곳으로 왔거든요. 교사하기 전까지 아이 키우면서 다양한 일을 했어요. 지역에서는 내가 뭘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더라고요. 보조금 사업이든 아니면 내가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활동이든 농사든지요. 그래서 ‘나도 이렇게 살잖아. 여기서 너네도 한번 하고 싶은 거 해 봐’ 싶었죠.


협동조합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예를 들면은 카페 창업하고 싶은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한테 매일 아침 커피를 한 잔씩 만들어줬어요. 졸업하고 나서 '멀리 가서 하지 말고 여기 금산에서 작업하고 연습해. 여기는 작업장도 많아'해서 조사장 커피가 시작이 된 거예요. 지금 원두 납품받아서 쓰는 중인데 그분은 지금 서울로 갔어요. 요즘 골목 자본 이런 얘기 하잖아요. 그런 자본들로 글로벌한 브랜드가 되는 건 좋은데 창업을 하는 초보적인 단계의 청년들이 성장 기반을 만들 수 있는 낮은 문턱, 무한한 가능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는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어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 셰어하우스, 청년 커뮤니티 지원 사업, 지금 이야기 나누는 두루미 책방도 학교 건물을 빌려 저희가 꾸린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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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변화가 있었다고요

2018년까지는 돈 버는 활동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생계를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아 어느 순간 한계가 오는 거예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돈을 못 버니까 애들이 1~2년 잘 놀다가 떠나는 거죠. 처음에 이름 지을 때 ‘들락날락’이라고 지은 이유도 이곳에 들락날락하면서 금산에서 자기 삶의 가능성을 찾는 플랫폼이나 거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같이 활동하던 청년들이 떠나니까 상실감이 있었어요.

이제는 돈을 벌자,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자 해서 2018년 말에 청년 협동조합을 설립했어요. 농촌 개발 사업들 많잖아요, 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죠. 축제 기획도 하고 행사 지역의 특색에 맞는 주민 주체들을 모으고 행사를 진행하고.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충남 권역의 기관에서도 맡겨주시면서 첫해에는 매출이 몇 천 만원이 안됐는데 이듬해 6~8천만 원으로 뛰더니, 작년엔 1억 5천까지 벌었어요. 그러니까 한 두세 명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엄청난 장사꾼도 아닌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구나 확인한 거죠.


제자가 같이 일하는 동료가 됐네요. 졸업생들이 보통 금산에 정착 많이 하나요

이전에는 졸업 후 지역에 거주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서 대학 진학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아니면 본가 부모님 자택에 있는 지역으로 가거나 상경하거나. 사실 학교 안에서만 3년을 보낸 거라 학생들도 지역을 잘 몰라요. 여기서 치열하게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지내니까 더 떠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 청년단체는 졸업생들이 많지 않았어요. 오히려 졸업생들이 소극적이었고 외부에서 청년이나 생태적인 활동에 관심 있는 분들이 금산을 찾아왔어요. 지금은 졸업생 반, 여러 가지 경험과 활동에 관심 있는 외부에서 온 친구들 반 이렇게 같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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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 많은 사람이 오셨으면 하나요
아니요. 꼭 왔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고 ‘와도 괜찮다’라고 이야기해요. 시골은 자원이 별로 없어요. 문화적이든 인적 네트워크든 도시에 비해 누릴 수 있는 인프라가 적은 게 사실이에요. 그랬을 때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명확한 지향이 없으면 굉장히 휩쓸려요. 그러면 자기 삶을 핑계 대기 쉬워요. 여기가 부족하니까 나는 못 사는 거라고. 그런 사람들이 오면 지역 사람들 입장에는 굉장히 상처예요. 그래서 와도 괜찮지만, 지역 사회 또는 자기 삶에 대한 방향과 주인의식을 전제로 왔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곳으로 이주가 쉽진 않잖아요
사실 저도 여기를 올까 말까 엄청 또 망설였어요. 도시에 있는 풍요로움이나, 또 저는 부모님하고 가까이 살았는데 돌봄이 갑자기 확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한 거예요. 제가 멈칫하니까 남편이 그게 무슨 핑계냐고 했어요. 만약 그때 못 왔으면 지금까지 불안하게 살았을 거예요. 저는 삶의 전환을 할 때는 굉장한 직관력과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금산에 가면 어디서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정말 삶의 전환을 절박하게 꿈꾸고 지역으로 간다면 그냥 그 흐름과 나의 직관에 맡긴 채 적극적으로 지역을 탐색하면 기회는 와요.

 

앞으로 꿈이나 바라는 점 있을까요
저는 장기적으로 비전을 꿈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여기 와서 갑상선 암 수술을 했거든요. 큰 암은 아니지만 어쨌든 삶의 위기들이 있었어요. 병을 마주하면서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꿈꾸는 일이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오늘 하루하루 재밌게 살면 된다는 마음이 생겼죠. 이런 생각이 절박하다 보니 아이들과도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가 저의 기본적인 방향이에요. 제가 애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해요.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꿈을 꾸는 거다. 간디학교 교가이기도 하고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 그게 제가 경험으로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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