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부여 김한솔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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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with 에디터 무해
청년문화예술공동체 '부여안다' 대표 | 로컬레스토랑 '부여제철소' 운영

인스타그램 @buyeo_anda


이번엔 어디를 가볼까. 서울과 가까운 곳이면 좋겠는데. 지도를 보던 중, 지인의 고향이라는 부여가 떠올랐다. 백제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곳.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그만의 매력을 느끼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부여를 검색하니 화려한 분장을 한 배우들 사진과 함께 시민 뮤지컬 이야기가 잔뜩. 알게 모르게 떠들썩한 분위기다. 기사를 좀 더 자세히 읽으니 그 중심에 한 사람이 있다. 20대에 연고도 없는 부여에 내려와 로컬 레스토랑을 차리고, 시민 뮤지컬을 진두지휘하는 청년. 어떤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길래 이러한 일을 벌이는 걸까. 그를 만나러 당장 부여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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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살고 싶은 동네를 스스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는 부여 청년들을 모아서, 지역에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는 ‘부여안다’라는 그룹의 골목대장 김한솔입니다.

 

'부여안다'는 어떤 단체인가요.

부여안다는 비영리 그룹으로,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도 모두 각자 자신의 영역이 있어요. 저도 주업이 따로 있고요. 서로 가진 재능을 교환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같이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역 주민들을 모아서 시민 뮤지컬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소모임을 만들어서 시, 러닝, 영화, 보드게임, 댄스, 아카펠라 등 이런 식으로 계속 취미 활동을 같이 해왔어요. 지금 하는 가장 큰 프로젝트는 앞서 말씀드린 '부여비트'라는 시민 뮤지컬 프로젝트고요.

 

지역에 여러 활동이 많은데 뮤지컬은 생소해요.

제가 워낙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시민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배우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저는 예술의 힘을 믿거든요. 같이 눈 마주치고 노래하고 땀 흘리고 춤추고 대형도 맞추고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연결을 믿어요. 무대에서 주는 폭발적인 기적의 날도 많이 경험했고요. 무대의 디데이 있잖아요, 연습할 때는 잘 안되고 싸워요. 그러다가 무대에 올라가면 이제 서로밖에 없으니까 서로 믿고 의지하다 보면 언제나 기적이 일어나요. 무대나 예술의 힘을 믿어서 소통의 수단으로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유연하게 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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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로 간의 화합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부여비트는 50+세대가 절반 이상이에요. 총 40명이 무대에 서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분들은 무대 경험이 없으니까 너무너무 어려워하고 낯설어하셨어요. 이번 주에 알려드리고 다음 주에 또 알려드렸는데 그래도 어려워하시고. 공연이 두 달 남았는데 가사도, 화음도, 박자도 잘 헷갈려 하시니 정말 힘들었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뮤지컬 끝나고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본인들도 힘드셨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냥 몸도 잘 움직일 수 있고 배우는 것도 수월했는데 (나이가 드니) 점점 느려지고 까먹고, 게다가 나로 인해 다시 연습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요. ‘내가 이것도 못하나’, ‘이렇게 내가 바보 같았나’ 싶으셨대요. 그런 고충을 서로 터뜨리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양한 세대를 만나는 것이 저에게 큰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세대 간의 교류를 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지역이 더 균형 있고 조화롭다고 느껴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혀서 만나는 게 여전히 힘들긴 해요. 서로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인가 싶을 때도 있고, 같은 것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일 때도 있으니까요. 근데 그 경험이 저를 더 깊어지게 해요. 적어도 '젊은 애들은 이런 방식의 언어를 사용하는구나' 저희도 '어른들이 살아온 삶은 이런 방식이었겠구나' 어렴풋이 서로를 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부여비트'로 인해 서로 더 끈끈해졌겠어요.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계속 뮤지컬 같이 했던 분들을 마주치는데요, 제가 뮤지컬로 이루고자 했던 소정의 목표를 이룬 것 같아요. 사업적 이익 외에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서 함께 달려가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진하게 연결되어야 내가 여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전 여기 연고가 없으니 연고를 만들고 싶었죠. 저와 비슷한 친구들에게도 지역에서 사람들과 잘 녹아들고 연고를 만들어준 게 부여비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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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표현하실 때 환대의 도시라고 얘기하셨어요.

저는 평생 늘 어딘가로 떠돌아다녀서 우리 동네라는 개념도 없고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동네 사람들, 부여비트 하면서 만난 어른들과 친구들이 서로의 삶에 옅게 개입하면서, 서로 돌보고 도와주니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여를 온 사람들도 제가 느꼈던 환대의 마음, 든든한 이웃들의 연결과 뒷배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소행성에서 만난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방금 말씀하신 숙소, 소행성B도 사비를 투자해서 직접 만드셨다고요.

맞아요. 361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부여에 계속 친구들이 오는데, 단순히 여행 목적이 아니라 여기서 지내는 청년들의 다른 형태의 삶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들이 더 좀 진하게 만나려면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저에게 그런 재주가 있어요. 타인에게 관심도 많은 편이고, 타인의 삶에 내가 도움을 줄 부분이 자꾸 보여요. 한 친구가 오면 ‘부여는 이런 게 없는데 네가 이런 거 해보면 어때?’ ‘너 오면 일단 소행성에서 지내면서 네가 여기 스텝을 하는 대신 한 달에 그냥 15만 원만 내고 있어도 돼.’ 이런 식으로 방법을 계속 제시해 주거든요. 어제도 주말마다 내려와 부여비트를 같이 했던 친구가 내년에 부여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벅차게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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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은 어떠셨어요.

서울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동체를 만들어 준다고 셰어하우스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정작 저는 정말 작은 고시원 원룸에 살았거든요. 돈을 벌어도 월세 내고 뭐 하고 하면 남는 것도 없이 계속 뭔가를 계산해야 하는 버거운 삶이었어요. 돈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성장하는 것 같지도 않고. 회사에서는 맨날 나는 이것도 못 하는구나 확인하는 기분이었어요. 계속 주눅 드니까 퍼포먼스를 더 못 내고 그러면 다시 눈치 보이고. 그러니 회사 가는 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러다 집에 오면 또 혼자 좁은 방 안에 있어야 하고. 아주 고독했어요. 


지역으로 이주하고나서는 달랐나요.

지역의 공동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틈에 오니 고민했던 게 의외로 쉽게 풀리는 구석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지역에는 청년이 적다 보니 기특하게 생각해서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세요. 로컬 레스토랑을 한다고 하면 그런 거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주목도 더 잘 받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더 자신감 있게 하게 돼요. 월세도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 하다 망하면 '아이고 망했다' 하고 다음 스텝으로 가면 되니까 무거움도 덜 했고요. 이렇게 가벼워지는 걸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에게, 또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해소하는데 지역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또 지역의 장점을 말해주신다면요.

자연과 맞닿아 있는 삶이 이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지를 감각적으로 느껴요. 정확한 수치상으론 알 수 없지만 훨씬 편안해요. 또 사람들의 마음이 빡빡하지 않으니까 타인에게 내줄 수 있는 곁이 많아요. 다양한 세대의 이웃과 연결되어 사는 삶을 살면서 우리가 그렇게 고독했던 이유가 너무 많은 것이 포화되어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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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업이 따로 있다고 하셨어요. 부여제철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부여안다는 저의 부캐고 본캐는 부여제철소라고 하는 식당 운영이에요. 부여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퓨전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 돈 버는 일이죠. 부여에 1년을 살기로 하고 6개월이 지났는데 뭐할까 고민하다, 그래도 이왕 시골에 왔으니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하자 싶었죠. 동네에 어디 레스토랑이 하나 비어 있는 데가 있었어요. 사장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쉬고 계신 곳이었는데 '사장님 제가 올해 말까지만 식당 좀 빌려주시면 제가 한번 운영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죠. 수익의 몇 퍼센트씩을 떼어드리는 식으로 6개월만 하기로 했어요.

 

시작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시네요.

재료비 100만 원으로 창업을 한 거라 쉽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인테리어 다 되어 있고 냉장고, 포크, 나이프, 접시까지 다 있는 곳에서 시작한 거니 창업 비용이 안 든 셈이죠. 애초에 6개월만 하는 계획이라 부담이 적기도 했고요. 근데 6개월이 지났는데 좀 더 운영해봐도 될 것 같았어요. 월급 받을 때보다는 수입이 적었지만, 이 돈이면 지역에서 월세 내고, 기름값 내고, 맛있는 거 사 먹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1년을 더 하기로 했고 또 1년을 더 하면서 이제 2년이 넘어가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어요.

 

무척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데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친구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는 마음과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저는 부여에 계속 살고 싶어요. 근데 이곳에 재밌는 게 별로 없으니 그럼 우리가 만들자 했던 거죠. 그렇게 해나가는 과정을 무척 많이 응원해 주세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관심 많이 가져주시는데 그런 부분 덕분에 자존감도 높아지고 내 삶이 의미 있고 선명하다고 느껴요. 원래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 티도 안 나는 삶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주변 사람들과 단단하게 연결돼 있으니까 자신감이 생겨요. 그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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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부여에 얼마나 살 건지, 부여에서 더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그런 포부와 비전에 대해 물으면 잘 모르겠거든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잘하고 싶어요. 그래야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반갑게 맞을 수 있더라고요. 부여를 오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제철소를 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우연이 재밌는 것 같아요. 우연을 계속 만나면서 우연을 믿으려고요.


앞으로 지향하는 삶이 있다면요.
제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은 공동체 속에 사는 거예요. 주변과 잘 연결돼 있고 소통하고자 애쓰면서 서로의 삶을 조금 돌보고 들여다볼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요. 개인적인 목표라면 아주 충만하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일의 불안함이나 과거의 영광에 쫓기지 않고 오늘은 그냥 오늘로서 충분한. 오늘 스스로 약속한 것도 잘하고 흘려놓은 많은 생각도 잘 정리해서 마무리했고 이대로 편안하게 코 잘 수 있겠다, 내일도 좀 재미있게 맞이해야지 하는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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