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정종순 님_#3 눈은 누가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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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순

전직 시의원ㅣ현직 충청인사이트 대표ㅣ시골N잡러

인스타 @egosword / @sigol.79

#3 눈은 누가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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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시골에서 맞는 첫눈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도시의 작은 소음도 섞이지 않은 적막한 아침, 창밖에 펼쳐진 마당과 나무와 건너편 산에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 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 꿈은 곧 이루어졌다.

 

첫눈인데도 제대로 된 함박눈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본 세상은 이미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로 접어들며 잔디도 빛을 잃고 나무들도 무채색에 가까워져 세상이 한지에 먹으로 그린 산수화 같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 위에 오로지 하얗게 빛나는 눈은 번잡한 색이 없어서 더 화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물을 끓인 다음 뜨거운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들고 딱 10분 동안 창가에 서 있었다. 저 눈은 내가 지금 나가서 밟지 않는 한 사람의 발자국 따위에 더럽혀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10분을 채우고 나서 시계를 보고 퍼뜩 그날 점심 약속이 생각났다. 다음엔 의문이 생겼다.


"저 눈이 왜 안 없어지지?"


아파트에서는 눈이 온다고 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다. 아파트 주차장은 경비 아저씨들이 이미 새벽같이 치웠고, 차가 다니는 큰길도 벌써 시청 제설차가 지나간 후라 눈이 왔다고 크게 위험하거나 질퍽거려서 바짓단이 젖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눈은 공중에서만 존재했다. 너무나 어이없게도 나는 눈이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엄마. 엄마 눈이 안 없어져. 저거 어떻게 치워?"

 

나이 먹어 결혼까지 하고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이런 전화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눈을 직접 치우는 건 평생 해보지 못한 일이다.

 

어머니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마을에서 트랙터로 눈을 치워줄 텐데 몇 시에 할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이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장님 역시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글씨. 우리 동네는 김 씨가 해서. 김 씨가 언제 할지는 모르겄는데."

 

그날 오후가 돼서야 저 멀리서 앞머리에 제설기를 단 트랙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눈이 와서 못 나간다는 말에 시내에 사는 친구들은 신기해했다.

 

그 겨울을 겪으며 시골에서 살면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치우는 데 쓰는 그놈의 블로어라는 것은 족히 10kg은 나가는 송풍기다. 김 씨 아저씨는 오로지 봉사로 해주시는 건데 경비 아저씨처럼 불러댈 수도 없고. 남편이 그걸 메고 최소한 500m 이상 길을 뚫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 겨울은 유독 추웠고 함박눈으로 시작한 첫눈은 귀여울 지경이었다. 폭설이 잦았던 그 해 눈 치우는 요령이 부족한 우리는 며칠씩 집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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