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언니 여섯번째 편지 : 지역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언니

 
 

성공의 공식도 정답도 흐려지는 시대 속 세상의 물살에 휩쓸리기 쉬운 지금,

🌱당신이 꼭 만나야할 시골 언니 (줄여서 ‘당만시’)🌱에서는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일궈나가는 8곳의 시골 언니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느슨하지만 단단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양을 발견해보세요!

모두가 서울을 꿈꿀 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옥천을 선택한 언니가 있어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세히 오래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지역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골잡지 <월간 옥이네>의 편집국장인 🌱박누리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월간 옥이네 편집국장 박누리입니다. 옥천에 이주한 지 13년째 되었어요.

 

옥천에는 어떻게 오게 되신 거예요?

고향은 경북 구미예요. 옥천신문사의 취재기자가 되면서 옥천으로 이주하게 되었어요.

 

옥천에 기자로 취직했다니 신기하네요!

어릴 때부터 “잘 되려면 서울 가야지”라는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만났던 좋은 선생님들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런 말이 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을 품었었죠. 하지만 저는 기자를 꿈꿨기 때문에 기자가 되려면 서울에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언론 정보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옥천신문을 소개해준 적이 있어요. 정말 훌륭한 지역 신문이자 손에 꼽히는 언론이라고 하셨죠. 기자 일을 하면서 동시에 내가 지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풀어낼 방법은 없는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방법을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저 신문사에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옥천신문에 대해 살짝 소개 좀 부탁드려요.

옥천신문은 1989년에 창간됐어요. 222명의 옥천 주민들이 5천 원, 1만 원, 5만 원씩 돈을 모아서 신문사를 건립한 군민주 신문이거든요. 한겨레 신문의 국민주 창간 방식처럼 만들어진 지역 주간지예요. 창간 이후에 보도를 잘하기로 유명했어요. 보도 자료를 베껴 쓰는 일도 없고 무조건 현장 취재를 가고, 팩트 체크를 거친 기사를 바탕으로 지면이 나오다 보니 기사의 수준이 높았어요. 실제로 현직 군수의 개인 비리를 밝혀내 구속시킨다거나, 의원을 낙선시킨 사례도 있었죠. 주민 편에서 지역 비리를 감시 견제하고 정책을 새롭게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좋은 언론사로 많이 소개되었어요.

 

멋진 곳이네요. 바라던 꿈을 이루셨군요!

제가 휴학을 좀 오래했는데, 마침 복학한 4학년 2학기 마지막 학기에 옥천신문 공채가 뜬 거예요. 그때 ‘아, 이건 운명이다!’ 싶었죠. 당시만 해도 옥천신문은 3~4년에 한 번 공채가 뜰까 말까 했었거든요.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당시 지원자가 30명이 넘었었죠. 두 번의 토론 면접, 임원 면접, 한 달간 합숙 면접을 거친 끝에 다행히 합격해서 옥천에 오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옥천이라는 지역 자체보다는 ‘옥천신문사에서 내 업무 역량을 키우고 싶다. 좋은 일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었죠. 내가 생각한 좋은 기자상에 알맞았고, 동시에 지역에서 무언가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에도 알맞았으니까요.

 

실제로 옥천에서 기자 생활을 해보니 어땠나요?

일하면서 지역사회를 통해 새롭게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았어요. 사실 제가 구미에서 나고 자랐어도 어떤 작은 공동체나 지역사회를 경험할 일이 없었거든요. 옥천에 와서 기자로서, 관찰자이기는 하지만 지역사회를 자세히 마주하게 된 거죠. 취재를 위해서는 계속 찾아가서 일부러라도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역공동체가 잘 돌아가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토대 위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단순히 관찰자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지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신문사에 있으면서 아무리 기사로 문제를 지적해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1989년 옥천 신문 창간호 1면에는 ‘우리 동네에 우리 지역의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제가 2010년에 입사하고도 썼고 2015년에도 썼고 2017년에도 썼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그러면서 날카로운 스트레이트 기사로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아무리 지역 이야기를 발굴하고 보도를 해도 신문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더라고요. 지역의 눈으로 발굴한 지역사회의 이야기들을 유무형의 콘텐츠로 만들고 아카이빙하는 일이 필요하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어요. 마침 2016년 말에 옥천신문사 내에 문화 콘텐츠 사업단이 만들어졌었어요. 그리고 2017년 초 고래실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독립하게 되었는데, 그해 7월 <월간 옥이네> 도 함께 창간됐죠. 저는 당시 옥이네 창간 준비위원으로 함께 했다가, 직접 제작에 뛰어들게 된 건 2019년부터고요.

<월간 옥이네>는 기존 지역 신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역 언론과 농촌 잡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희는 일반적으로 신문사에서 취재하지 않는 지역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다뤄요. 예를 들어 길고양이 문제를 다룰 때는 실제로 길고양이를 쫓아다녀 봐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길고양이 밥을 주는 분들을 만나거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길고양이 밥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돼요. 보통 단순히 고양이를 좋아해서 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 이유뿐만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을 인터뷰해보면 주변에 음식물 쓰레기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쥐들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걸 막으려면 길고양이가 필요하다는 거죠. 쥐가 사람에게 직접 닿을 수 없도록 중간에서 끊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고양인 거죠. 이렇게 보면 길고양이는 지역 생태계 안에서는 중요한 존재예요. 그래서 길고양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잡지에 담아내죠. 관련해서 정책을 만들고 있거나, 보호 활동을 하는 다른 동네 인터뷰를 싣기도 하고요. 사실 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신문에서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들이죠.

 

지역 잡지는 지역 생태계가 더 잘 굴러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군요.

저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제일 보편적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농촌의 문제들은 다른 지역 농촌에서도 동일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월간옥이네는 옥천뿐만 아니라 외지에 사는 구독자 비율이 높아요. 그분들이 월간 옥이네를 통해 내가 그냥 살았을 때는 전혀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옥천 잡지이기는 하지만 옥천만의 잡지가 아닌 거죠. 옥천의 이야기를 담지만 그게 옥천만의 이야기는 아닌 거예요. 이전에 저희가 작은 학교를 주제로 특집 기사를 썼을 때도 ‘우리 동네 작은 학교에도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옥이네에 실려서 너무 반갑게 읽었고 많이 공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시시콜콜하다고 여겨지는 가장 지역적인 이야기들이 가장 보편적이고,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그게 진짜 지역 잡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아요.

옥천 시골언니 프로그램에도 로컬 미디어의 특징이 잘 반영된 것 같아요.

맞아요. 저희는 취재라는 형식을 빌려 옥천 공동체를 이루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볼 계획이에요. 옥천에는 토종 씨앗을 보전하는 여성 농민, 작은 도서관 운동 같은 마을 공동체 관련 활동하시는 여성분들, 청소년 관련 활동을 하는 옥천의 젊은 청년들, 옥천의 로컬 푸드를 중심으로 친환경 먹거리 정책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농민분들 계세요. 그리고 옥천에는 공동체 라디오가 있어서, 직접 라디오 방송도 해 보려고 해요. 라디오는 기자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일반적인 미디어와 달리 직접 본인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마이크를 쥐고 스스로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한 자립과 자치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기본이 되어야 어디서든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요구하고 찾을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도 만들 수 있고요. 그런 중요한 기술을 체득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살짝 진로 활동 같은 느낌도 있네요. 물론 대도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여성 언론인이자 옥천 시골 언니로서 박누리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옥천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일을 하면 할수록 지역사회 내에서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계속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그렸던 그 기자상에도 너무 적합한 곳이 이곳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다들 그러겠지만 ‘내가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자를 꿈꾸곤 하잖아요. 세상 전체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여기 옥천에서는 나의 글과 사진으로 내 주변을 조금씩 계속해서 바꿔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나와 공감하며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요. 이전에 저희가 길고양이 보도 이후에 길고양이 관련한 캠페인을 마을 카페 둠벙에서 했었거든요. 그 활동을 기반으로 동물 보호 조례안을 제안했고 그 조례가 정말로 만들어졌어요. 그 덕에 올해부터 옥천군에서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저희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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