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언니 두번째 편지 : 숲속엔 해달들이 산다





성공의 공식도 정답도 흐려지는 시대 속 세상의 물살에 휩쓸리기 쉬운 지금,

?당신이 꼭 만나야할 시골 언니 (줄여서 '당만시')?에서는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일궈나가는 8곳의 시골 언니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느슨하지만 단단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양을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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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경관으로 이름난 영남알프스의 대표적인 산간마을 소호마을에는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시골 언니들이 살고 있습니다. 분명 숲속인데,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서로를 꼭 붙잡아주는 해달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소호마을의 풍경과 사람에 반해 냅다 이주를 결정하고, 이제는 자신들처럼 소호마을에 풍덩 다이빙할 뉴페이스를 기다리는 ?울주 소호마을 언니들?과 함께한 유쾌한 수다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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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섯 분의 시골 언니께서 각각 맡은 역할이 있으시다고요.

? 영순 네, 저는 도시 청년들에게 쉼과 안정, 편안함을 주는 시골 언니입니다.
? 진경 저는 참가자들과 비슷한 연령대에서 일상을 함께 할 친구 같은 시골 언니입니다.
? 현이 저는 엄마 같은 시골 언니. 시설이 좀 미비한 게 있으면 보완도 해주고, 차량 인솔도 하고, 밥도 해주고 맛난 간식도 해줄 거예요.
? 리현 저는 같이 딱 붙어서 따라다니면서 함께 생활할 친구 같은 시골 언니입니다.
? 미진 저는 언니들을 따라서 살아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기로 했어요.

다섯 분은 어떻게 뭉치신 건가요?

? 미진 맨 처음에 영순 언니가 98년에 들어와서 살고 있었고요. 2004년에 소호마을에서 영순 언니랑 같이 여성 모임이 있었어요. 그래서 소호마을에 왔다가 ‘여기다! 여기 들어와야겠다.’ 해서 거의 보름 만에 눈길을 헤치고 집을 구해서 들어왔어요. 집도 안 지어진 상태에서 들어와서 민박집에 있으면서 한쪽에서 집을 막 짓고.

? 현이 저는 울산에 살았었고, 봉사 활동에서 영순 언니를 알게 되었어요. 아들을 소호마을로 산촌 유학을 보내면서 더 친해지는 인연이 됐어요. 그때부터 코가 꿰여서 야생차 협동조합을 같이하다 보니 집도 사고 땅도 사고 하면서 여기까지 들어왔죠.

? 진경 저는 귀농 귀촌은 정말 쥐뿔도 몰랐고 그냥 산을 미친 듯이 다녔거든요. 텐트 짊어지고. 그때 제가 적게 벌고 적게 쓰기, 타이니 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작은 집짓기 교육 협동조합에서 영순 언니하고 미진 언니가 교육을 하고 있었어요. 언니가 저에게 ‘스태프 해볼래?’ 하셔서 ‘그럼 해볼까요?’ 했는데. 작은 집 짓기 교육은 어그러지고 갑자기 귀농·귀촌 교육을 하신다고 하셔서 귀농·귀촌 교육에서 스태프를 하게 된 거예요. 그 교육 현장이 소호마을이었어요. 그러면서 숲 체험도 하고 농사 체험도 그러다가 제가 지금 텃밭 농사를 짓고 촌에 살고 있네요. 시골 언니의 참가자들이 저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이 언니들을 만나서 6년을 계속 도시에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다가 들어왔거든요.

? 현이 저도 한 3, 4년을 출퇴근했어요. 여기 살까 말까를 고민했죠.

? 영순 그래도 안정적으로 재고 그런 게 있었네. 미진이랑 나는 문제다.

? 진경 여기는 그냥 다이빙.

? 영순 저는 여기서 쑥을 캐고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쑥 캐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저희 애들도 그냥 엄마랑 떨어져서 막 풀밭에서 놀고요. 그래서 알고 지내던 스님에게 ‘여기 집 없나요?’ 했더니 ‘저기 집 있다’ 하셔서 딱 들어온 거예요. 한 보름 만에.

? 현이 이런 케이스는 원래 없어요.

? 리현 저는 여행 학교에 갔다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지금 같이 사는 친구에게 소호마을에 있는 우리 집에 가면 공간이 되게 많다. 그걸 우리가 쓰자고 계속 얘기하다가 졸업하고 바로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왔어요. 전 원래 도시에 나갈 생각이었거든요, 항상 도시 나가서 살아야지 했었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엄마가 날 시골에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구나. 너무 좋은 경험을 했어.’ 하면서 혼자 감동했었죠.

? 미진 근데 왜 도시에 나가려고 했어?

? 리현 도시가 재밌으니까.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친구들도 많고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고. 그래서 요즘에 갑자기 ‘난 왜 시골을 좋아하는 걸까’ 그런 고민에 빠지면서 온갖 생각에 잠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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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와도 고민이 끝나지 않는 걸까요?

? 현이 그렇죠. 갈까 말까 또.

? 미진 완료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현이 왔다 나가는 사람도 많거든요. 적응 못 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그래서 마을에 아는 사람들이 있는 게 되게 중요한 거죠.

? 진경  저는 거의 10명의 언니가 저를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 영순 10명씩이나? 또 누가 있어?

? 진경 바위 쌤, 명진 쌤도 맛있는 거 챙겨주시고 정원 쌤이랑 명희 쌤이랑 그리고 복순 쌤도 한 번씩 불러서 얘기도 해주시고. 저는 진짜 수많은 소호의 언니가 저를 돌봐줬다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좀 힘들어 보이면 딱 불러서 적절한 말을 해주시고 막걸리도 같이 먹어주시고 하시면서 10명의 언니가 저를 살려줬죠.


어쩐지 언니들과 참가자들을 끈끈하게 엮어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 현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우리가 왜 소호마을에 왔을까?’ 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친한 사람이 있어서 오고 가고 하다 보면 오게 되는 게 아닐까.

? 진경 그리고 시골에 나이 든 어르신들의 조금 결여된 성인지 감수성 때문에 도시 청년들이 처음 들어오면 너무 뜨악하는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 걸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게끔 연결해 줘야 할까 고민했던 지점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 리현 저도 그렇고, 같이 사는 친구도 그렇고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근데 무슨 일이 있을 때 혼자서는 그걸 해결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럴 때 (저나 언니들에게) 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다 보면 사이에 사람이 있으니까 왔다 갔다 하면서 소통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미진 (참가자들에게) 시골 언니가 그런 역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 영순 완충지대네, 그치.


완충지대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 진경 지금도 동네 할머니께서 저희 집 마당에 개를 데리고 오시기도 해요. 마당 대문을 열고 진짜 그냥 들어오시거든요. 그냥 놀러 오셨대요. 그 개가 저희 집 기둥에 똥도 싸고, 근데 그냥 막 웃으세요. 저는 약간 미치겠는데. 근데 이 지역을 6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이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편해지는지 경험이 쌓인 게 그럴 때 좀 쓰이더라고요. 그게 되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른 청년들도 그냥 무턱대고 시골에 탁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좀 탐색을 하면 좋겠다 했죠. 한 번 틀어진 관계는 다시 붙이기가 어렵잖아요. 애초에 틀어지기 전에 이 사람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그럼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어떻게 관리해야겠다는 경험을 쌓고 들어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 영순 어쨌든 마을 공동체라는 게 엮여 있고, 마을 사람들이 100년 이상 틀을 잡고 살아왔던 문화의 맥이 있으니 거기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건 어색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고 특히 여성이 자리 잡는 건 더 어려운 점들이 포함되는 거죠. 마을 어르신들도 요즘 청년들은 어떻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들이 있고요. 서로 접하면서 도시와의 문화적인 격차를 좁혀나가야 하는 건데. 문화적 격차를 좁혀나간다는 건 시간과의 싸움인 것 같거든요. 다른 건 제도나 법으로 바꾸면 팍팍 바뀌는데 문화적 격차는 정말 살면서 바꿔가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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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선배로서시골의 삶은 어떤 느낌인가요.
진경 촌의 삶을 동경하는 도시 청년들이 많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라고 얘기하는 친구가 제 주변에도 많이 있어요. 근데 제가 그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해줄 수가 없는 거예요. 너는 들어오면 이렇게 될 거라는 청사진을 얘기해 줄 수가 없는 거예요. 편차가 너무 크니까. 본인 하기 나름에 따라서 너무 달라지니까. 왜냐면 그들의 태도에 따라서 일거리가 많기도 하고 아예 없을 수도 있거든요. 제가 밀양 얼음골에 사는 청년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시골에 살면 그래도 굶어 죽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이제 저희에게는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살 수 있다는. 시골에는 항상 일거리가 많고 항상 사람이 부족하니까 안 굶어 죽고 살겠다는 확신은 지금 우리한테는 있거든요.

? 현이 시골엔 일손이 모자라니까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은 그 일만 해도 살 수 있어요. 요즘 시골도 인건비가 세잖아요. 몸 말고 머리를 쓰고 싶은 청년은 저희 같이 지원 사업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시골에 와야 하고요. 저희는 그런 청년이 오면 같이 일을 펼쳐낼 수 있어서 좋거든요. 

? 진경 근데 뭔가 명확하게 말하기가 어렵죠. 도시는 채용할 때 입사 몇 년 차, 연봉 얼마, 휴일 며칠 이런 게 딱 나오는데 시골은 그걸 어떻게 구조화해서 얘기할 수가 없는 상태예요.

? 미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말해야 해.

? 영순 미래적이야. 프리랜서처럼 할 수도 있고. 출퇴근 스트레스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출퇴근과 상사로부터의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이 좋을 수도 있고요.)

? 진경 도시와 마찬가지로 시골에도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도시는 어떤 장점과 어떤 단점이 있는지 명확히 보이는 데 비해서 시골은 그런 게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달까. 분명히 장점이 있고, 분명히 일할 수 있고,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단점이 있는데 그것들을 도시처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 현이 어떤 일이 딱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만들어내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한 상태인데. 근데 만들어내는 걸 누가 해주는 게 아닌 거죠.

 

소호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 미진 소호는 여느 농촌보다는 사실 경지가 많이 부족해요. 옛날에 되게 먹고 살기 힘들었대요. 그래서 농업을 주로 하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고요. 시골의 삶, 생태적인 삶 이런 걸 원했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아이들부터 젊은 엄마 아빠, 원래 사셨던 50~60대 또 70~80대 어르신들까지 굉장히 좀 골고루 있는 편이고요. 좀 숲 같다고나 할까? 나무가 골고루 있는 숲처럼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진경 여기가 촌치고는 촌이 아니에요. 촌 치고는 사고가 다들 깨어 있으시고, 언니들 같은 완충지대도 있고요. 공동체성이나 자연 친화적인 삶, 이런 키워드에 가까운 청년들이 오기에 좋다고 생각해요.

 

참가자가 소호마을에 오면 어떤 걸 경험하게 될까요?

? 영순 저희 다섯 명의 시골 언니들과 함께 2주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시는 거죠. 기존의 프로그램들은 체험 프로그램이 짜여있고, 참가자들은 그 체험에 참여하고 때가 되면 누군가 식사를 차려주잖아요. 굉장히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에 쫓기면서 피곤하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사실은 서로 교감하는 시간이 되게 적다고 봤어요. 그래서 저희는 오히려 2주간 같이 살아보자. 같이 밥도 해 먹고 산책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자리들도 탐색해보면서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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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떤 분께 추천하시나요?

? 진경 도시의 삶에 지쳤거나, 좀 새로운 방식의 삶이 없나 궁금해하고 있고 탐색해보고 싶은 다양한 청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할 때 비로소 뭐든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계속 미래지향적으로 살잖아요. 대학을 잘 가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야 하고. 그렇게 계속 달리면서 내가 진짜 뭘 원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뭘 했을 때 행복한지를 놓치고 살다가 30대 초반이나 중반쯤에 안정적인 시기가 오면 다 현타가 오는 것 같더라고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지 하면서요. 성공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근데 그걸 사전에 그 시기까지 가기 전에 좀 멈추고, 나는 진정으로 뭘 원하는 사람이고 뭘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골 언니 프로그램은 그런 걸 하기에 적절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2박 3일로는 내가 뭘 원하고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생각할 수가 없거든요. 멈춘 상태에서 2주 정도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되면 좀 찾아지는 것 같아요.

? 영순 저희가명상을 하면서도 느끼는 건데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의 불안과 염려 때문에 생각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일상의 패턴 안에서는 그 생각을 쉴 수가 없어요. 휴식을 하면서도 쉬어지지 않아요. 진경이 얘기했듯이 잠시 멈춰야지 자신을 좀 지혜롭게 바라보는 일이 생기는데 일상의 패턴 속에서 계속 있는 한은 못 멈춰요.

? 진경 일상의 관계와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야만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이 글을 보는 도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리현 여기에 오시면 저랑 친해질 수 있어요! 제가 원래 친구들도 맨날 저희 캠프로 모아서 왔었거든요. 근데 한 친구가 ‘네가 여기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 내가 힘들 때나 쉬고 싶을 때 놀러 올 수도 있고, 심심할 때 놀러 올 수도 있고 그래서 너무 좋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네!’ 했죠. 제가 있으면 같이 놀러 올 수 있잖아요. 아예 살러 오면 더 좋고요.

? 진경 다양한 길을 탐색하는 도시 청년들이 시골에도 이런 새로운 길들이 있구나, 그리고 그 새로운 길을 같이 열어갈 이런 길벗들을 또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서로 의지하면서 하하 웃으면서 그 길을 같이 걸어가면 좋겠어요.

? 미진 그래서 시골이라고 너무 겁먹지 말고 되게 아름다운 마을이니까요. 여기에 와서 시골 언니들도 만나고 시골 사람들도 만나면서 자기 삶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당탕탕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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