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노해원님_#3.좋은 어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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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원
충남 홍성에서 귀촌생활 중ㅣ세 아이의 엄마ㅣ여자 축구팀 '반반FC'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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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좋은 어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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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바람

"아랫집 놀러 가도 돼?"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나에게 묻는다. 그러고는 대답과는 상관없이 우다다 달려간다. 매일 같이 아랫집으로 뛰어 가는 아이들에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쉬셔야 해" "오늘은 좀 늦었으니 집에서 놀자~"라며 붙잡아 두곤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놀자고 안 하고 자전거 한 번만 타고 올게" "어제 두고 온 잠바만 가지고 올게"라며 어떻게든 내려갈 핑계를 만들어 낸다.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며 처음 만났다. 마을 가장 끝자락에 있는 통나무집. 여기서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네 집이 있다. 창밖으로 서로의 마당이 훤히 보이는 거리.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경계 없이 뛰어 논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집에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듣고 한여름 땅벌에 쏘여 가며 우리 집 주변의 풀을 모두 뽑아 주셨다. 우리가 이곳에 살게 된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챙겨 주신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두 분을 보며 대가 없는 사랑을 배웠고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마음을 키웠다. 아마 늘 옆에 붙어 있던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나보다 더 마음을 키웠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처음 아랫집으로 내려오던 순간을 아직도 마음속에 고이 접어 간직하고 계신다. 지금도 그때 아이들의 표정, 했던 말들,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 하시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가끔 우리의 만남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인생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믿게 되었는데. 그 믿음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이다. 마치 온 우주가 우리를 응원해 준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느 날 둘째가 말했다. "엄마, 우리는 이웃 운이 진짜 좋아. 그치? 집이 좀 좁고 그래도 이웃 운이 너무 좋아서 다른 데로 갈 수가 없네" 아이의 말처럼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내 주변에도 좋은 어른들이 많았다. 노동운동에 청춘을 바친 부모님 주변에는 항상 세상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어른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 속에서 어른들의 고민, 어른들의 언어를 듣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귀여워했고, 그 옆에 있던 이모 삼촌들도 그런 나를 귀여워했다. 그 속에서 몇 마디 말이라도 섞은 날엔 왠지 내가 훌쩍 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른들과도 말이 통하는 어린이라며 속으로 으스대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그때 나를 귀여워 해 주던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를 그냥 어린애로만 보지 않고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귀 기울여 주던 얼굴들. 이제는 그 얼굴이 나를 으스대게 해 준다. '나 이렇게 좋은 어른들 사이에서 자랐어.' 하고. 아이들과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그런 좋은 어른들의 얼굴이 곳곳에 남겨질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종종 아이들과의 시간을 일기처럼, 때로는 편지처럼 써서 보내 주신다. 차곡차곡 쌓인 그 글들을 읽으면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함께 했던 순간들이 그려진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가다 자주 눈물을 훔친다. 거짓 없고 맑은 그 순수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를 이어 준 우주에 감동해서.

 

 

-아랫집 할아버지 일기-

 

하룻밤 새우자고 하던 이음이가 ‘내일 또 일어나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종이를 접어 칸을 나누어 ‘아야 어여… ‘ 글자를 쓰다가 이따금, 먼저 잠든 울림이 머리맡에 가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음이 마저 잠들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울림이와 이음이가 우리 집에서 잤어요. 아이들 큰손님을 맞이하려고 아침부터 몸을 깨끗이 씻고 집 안팎을 청소하고, 아내는 저녁과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나는 잠들기 전 읽어줄 동화를 찾아두었어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온 아이들과 달리기 내기도 하고 ‘우노’라는 카드놀이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영화도 함께 보았어요. 동화는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개구리’를 들려주었어요. 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넘어져 밑에 깔려서도, 나이도 많고 힘이 센 아이에게 ‘남의 그림을 뺏으니까 나쁜 놈이지.’라고 할 때, 울림이는 나는 저렇게 못할 거라고 했어요. 밤이면 하늘 높이 떠 나를 지켜주던 울림이와 이음이 별이 꽃잎처럼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와 지금 내 곁에 쌔근쌔근 잠들었어요.

(2022.2.26)

 

‘우리’에게 제사를 어떻게 설명하지요? 어제는 아버지 제삿날이었거든요.

나 : 만약에 할아버지가 죽으면, 지우 삼촌이 해마다 할아버지 죽은 날을 기억하여 밥도 떠놓고 물도 떠놓고 하는 거야.

우리 : 할아버지가 왜 죽어.

나 : 늙었으니까.

우리 : 지우 삼촌이 훨씬 더 늙었어.

나 : 지우 삼촌이?

우리 : 응.

나 : 그래도 지우 삼촌이 먼저 죽으면, 할아버지 마음이 아프잖아.

우리 : 할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아프지.

나 : 그러면 할아버지 안 죽을게.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안심이 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당분간 죽지 않기로 했어요. 팔과 다리에 모기한테 두 방이나 물렸다고 ‘좋겠지’ 하며 나를 보자마자 자랑하는 ‘우리’를 아프지 않게 하려고요.

(20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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