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시골친구_순천의 장성해님을 소개합니다!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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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시골친구 @장성해 with 에디터 원영

12년 차 생태문화기획자 |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 저자 | 주식회사 '제멋' 대표


인스타그램 @seong_hae_jang

시골에 살며 농사짓는 삶만이 생태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없죠. ‘생태적인 삶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하잖아요. 무엇이 더 생태적인 삶이냐를 논하기보다는 크든 작든 할 수 있는 만큼 삶에 생태를 들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생태문화기획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지역에서 생태적인 삶을 산다는 건 어떤 노력을 의미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문화기획에도 일상에도 생태 한 스푼추가하는 일이라고. 길목마다 정원이 마법처럼 숨은 저전동 마을에서 네 번째 시골친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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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화기획이 조금은 낯설게 들리는데, 어떤 계기로 그 일을 시작하셨나요.

진로 고민이 한창이던 때, 잠시 대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회사가 문화기획을 하는 곳이었어요. 당시 회사가 전통 시장 활성화 사업을 주관했는데, 침체 중이던 전통 시장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화예술이 가진 힘이라던가 전통을 재해석하는 기획만으로도 지역을 되살릴 수 있다는 걸 경험했죠. 그 경험이 저에겐 인상 깊었고, 자연스레 다니던 회사에서 문화기획자로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문화기획자로 일하면서 계속 고민이 있었어요. 무언가를 기획했을 때,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단순하지 않더라고요. 어떤 행사를 열고 나면 아무리 좋은 기획이었대도 버려지는 쓰레기가 늘 마음에 걸렸어요. 작은 이벤트를 열더라도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에 끼치는 영향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기획에 생태를 위한 고민과 행동이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영화제를 기획할 때 기념 굿즈를 은근슬쩍 대나무 칫솔로 만든다거나 행사가 진행되는 전반에 쓰레기가 최대한 덜 나올 수 있는 쪽으로요. 그간의 경험과 고민을 가장 열심히 담아 일했던 사업이 바로, 이 마을(저전동)에 정원을 만드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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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동 마을 곳곳에 정원을 만드는 사업이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골목길 어귀나 이웃집 마당, 공터에 컨셉이 다른 정원들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관심 있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원사 교육을 진행해 주민들이 직접 마을 정원을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이외에도 개선되면 좋을 마을의 골칫거리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하는 사업이었죠. 마을에 정원을 끌어들임으로써 마을 분위기가 바뀌고, 그 변화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저로서는 뿌듯함을 남긴 일이었어요.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누구의 것도 아닌 정원을 마을 어르신들이 들여다보는 모습은 저에게도 인상적이었어요. 정원에 핀 꽃들 덕분에 이 마을이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는 정원을 도시와 야생 사이를 잇는 공간이라고 해석해요. 도시 아파트 생활에 더 익숙한 사람들과 시골 야생에 더 익숙한 사람들 사이 접점으로써 정원을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낯선 사람이 동네 구경을 할 때, 말을 트기가 쉽지 않잖아요. 주민으로선 경계도 되고요. 그런데 정원이 생기면서 처음 마을에 오는 사람도 꽃 이름이 뭔지 물어보며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마을 어르신들 인사말도 달라졌어요. “꽃향기 한번 맡아보소!” 이렇게요.

물리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도 정원이 유용했어요. 빈집을 허물고 정원으로 만들면서 빈집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도 예방하고, 마을 주민들에겐 자기 집이 아닌 또 하나의 쉴 수 있는 장소로 기능했죠. 빗물가로 정원 같은 경우, 도로에서 흘러 내려오는 빗물이 도로에 인접한 주택 대문 안으로 들이치는 불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문화기획에 정원을 끌어들임으로써 생겨나는 장점은 정말 많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식물을 보여주기식으로 쓰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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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동이 생각보다 도심에 있어서 놀랐어요. 지역에서 생태 관련 일을 한다고 하면 농촌에 더 밀착해 일하시리라 예상했거든요.

스스로 어느 쪽에도 속하기 애매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문화기획과 생태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느낌? 아예 시골로 들어가 농사짓고 자급자족하는 방식으로 생태적인 삶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도심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도심에서도 생태적인 삶을 실천해 볼 수 있었으면 했죠. 마침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시작될 때였고, 시민들에게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전달하는 경험을 쌓고 지역 행정 조직의 구조도 파악해보자 싶어서 도심에서 살아보기로 선택했어요.

‘생태적인 삶’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하잖아요. 사소하게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일상부터 조금 더 깊게는 채식까지 다양하겠죠. 그 경중을 두고 무엇이 더 생태적인 삶이냐를 논하기보다는 크든 작든 할 수 있는 만큼 삶에 생태를 들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꼭 시골에 살고, 농사짓는 삶만이 생태적인 삶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거죠.

 

오랜 시간 동안 저전동현장지원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셨죠. 지역의 공공 조직에서 문화기획을 한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개인이 시도하기 어려운 기획도 해볼 수 있어 좋았어요. 빈집을 허물고 정원을 만든다는 게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규모와 예산의 일이잖아요. 행정의 힘을 빌린다면 가능하죠.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도 다른 점이었어요. 같은 일이라도 주체가 행정이냐 민간이냐에 따라 시민들에게 알려지는 범위나 연계되는 일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경험했죠. 행정이 가진 파급력을 잘 이용한다면 기획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어요.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한다는 건 촘촘한 사회망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때로 부대낄 때는 없나요.

그건 제 성격 덕이 큰 것 같아요. 원체 덤덤하고 해맑은 편이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지역 사회는 익명성이 없는 데다 일의 특성상 주민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일희일비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격이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때로 마을 분이 제가 기획한 일에 불만이 있다는 걸 들으면 상처받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정공법으로 나가요. 직접 찾아가서 뭐가 마음에 안 드셨냐 물어보죠. 제가 귀담아듣고 개선해야 할 부분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역에서 기획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 또한 사람들에게서 나와요. 나와 긴밀히 연결된 사람들로부터 받는 에너지와 배울 점들이 일하는 데에 도움을 주죠.

 

순천이 고향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순천에 살기를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가족들이 순천으로 이사 와서 저도 따라온 거였어요. 한동안 내가 뿌리내릴 곳을 찾으려고 국내외 생태 마을을 가보기도 했지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건 순천이라고 판단했어요. 지난 경험으로 순천시의 정책 흐름과 방향을 잘 알고 있었고, 순천이 ‘생태 수도’라는 지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태나 정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지역보다 크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순천이 가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죠.


우연한 기회로 순천에 와서 벌써 12년을 살았어요. 이제 순천에 잘 정착했다고 봐도 될까요.

내가 순천에 정착했다고 느낀 순간은 훨씬 이전부터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이곳을 떠날 수 없겠다고 느낀 건, 작년에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라는 책을 쓰고 나서였어요. 10년 넘게 살았어도 더 매력적인 곳이 있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이었고,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순천에서 살아온 얘기, 앞으로 순천에서 하고 싶은 일 얘기를 밖으로 꺼내고 나니 이제는 진짜로 순천에 있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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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살아온 시간을 책으로 펴낸 경험이 순천을 떠나지 못할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어 준 셈이네요.

맞아요. 그리고 책을 쓰는 과정이 저에겐 치유였어요. 책을 쓰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응원받았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감사한 분들이 셀 수 없이 떠오르더라고요. 책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제가 순천에서 잘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순천 로컬 여행사를 창업하는 게 꿈이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그 꿈은 지금도 여전한가요?

사실 제 꿈이 정말 크거든요.

 

꿈은 일단 크고 봐야죠.

정원계의 ‘오늘의 집’을 만들겠다고 자주 말하는데요. 얼마 전, 주식회사 제멋을 창업했어요. 전남 권역에 있는 정원 관련 공간, 정원 관리 꿀팁을 소개하는 것부터 원예 강의, 정원용품 판매까지 계획하고 있어요. 저전동 정원 마을이라는 든든한 자원을 믿고, 저전동 투어 상품도 준비하고 있고요. 여행사인 동시에 제품 판매도 하는 회사를 꿈꾸고 있어요. 요즘엔 사무실 리모델링하랴, 투어 상품 펀딩 준비하랴 정신없지만 차근차근해 나가야죠.

 

그간 쌓아온 단단한 내공이 있기에 성해님의 제멋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기획이라는 게 뚜렷한 성과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온갖 잡일은 다 하는 것 같은데 연봉은 오르지 않고, 이 일을 하면서 먹고 살 만큼 기술을 습득했는가 질문하면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확신할 수 있었어요. 기획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이걸로 먹고 살 수 있겠다고. 그 확신을 가진 다음엔 거침없어졌죠. 생각보다 빨리 창업을 저지르긴 했지만 뭐, 잘할 수 있겠죠. 새로운 출발선에 선 기분이에요.

 

도시를 떠나 지역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순천의 어떤 매력을 어필하고 싶나요.

우선, 서울보다 집값이 싸다! 그리고 정원, 생태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은 분에게는 순천에서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꽤 있다는 점. 순천은 생태도시 조례나 토종 씨앗 조례를 가진 도시거든요.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지역보다 관련 일자리가 많은 편이고, 창업하더라도 정원 생태 관련 사업은 비교적 지지를 받는 편이에요. 설사 내가 관련 경력이 전혀 없더라도 순천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정원 관련 교육을 듣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죠.

무얼 하든 시민들이 합의한 생태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점이 순천의 매력이에요. 업사이클링 화분을 이용하는 꽃집을 열거나 제로웨이스트 어메니티를 쓰는 게스트하우스를 열어도 순천에선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져요. 이런 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어 있으니, 생태와 정원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순천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요.


* 도서 이미지 출처 @seong_hae_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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