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예술가와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왔기에, 문화기획은 자연스럽게 이전 하던 일과 연관된 분야인 교육기획과 공연과 축제(행사)기획을 주로 하게 되었다. 거주지에 기반한 지역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지역예술가를 비롯해 주민들과 교류도 많이 하게 되고, 동네에서 좋은 분들과 좋은 뜻으로 '지역예술가 민간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듯 민간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면서, 연대와 네트워크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중요성과 필요를 많이 느끼게 되었다. 때마침 좋은 기회로 지역문화재단에서 지역예술가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일하게 되면서 실제로 네트워크를 발굴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경험도 쌓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내가 일부러 계획한 바는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만들어 내고 있더라는 기가 막힌 자연의 섭리랄까. 직장 생활 4년 만에 마침내 공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다시 프리랜서 기획자와 예술가의 신분을 회복한 나는 '향후 5년 안에 귀농귀촌을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나름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귀농이 뭔지도 모르면서 젊은 패기 하나로 귀농하겠다고 설쳐보니, '이거 만만치가 않겠는데?' 싶었다. 실제로 품삯 받고 농사일을 해보니, 기술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커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 농사일 한번 안 해 본 보통의 청년 여성이니 당연했다. 사실 농사뿐만 아니라, 사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땅도 없고, 집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을 나에게 들려줬다. "시골엔 집도 없다. 땅도 없고, 생각보다 비싸다. 텃세가 심해 금방 다시 돌아온 사람도 태반이라더라. 2~3년은 수입 없이 지출할 대비를 하고 가야 한다."
꿀벌 스타트업 실패 이후, 나는 나도 모르게 약간 위축되어 있었고 초초무한긍정파워갑인데도 부정적인 '~카더라'통신을 많이 들으니, 이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위 귀농하고 싶어 하는 청년 기준으로, 부모님이나 하다못해 친척이라도 농촌에서 자기 땅과 기술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어야 그나마 귀농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나는 그들(농사짓는 부모님을 둔 청년)을 '귀농계 금수저'라 불렀다. 나는 부모님 포함 친지들 중 지역 연고도 전혀 없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귀농계 흙수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