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라님_#2 서울 O도녀, 시골에선 귀농 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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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마음을 쓰다듬는 예술가, 기획자, 예술강사열정 시골탐방러

 

인스타그램 @la.punzell(개인) / @voyage_logbook_2023(지역탐방기록)

#2 서울 O도녀, 시골에선 귀농 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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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벤쳐를 표방하던 꿀벌 스타트업은 아쉽게도 잘 되지 않았다. 시골과 조금이라도 엮여보려 했던 시도는 푸른 새싹이 드문드문 나다가 이내 시들시들 말라갔다. 물 주고 거름도 주고 좋은 햇빛을 보게 해줬어야 했는데, 열정만 많았고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껏 대부분의 시간을 프리랜서로 살았던 나는, 인생의 파도를 따라 갑자기 팔자에도 없는 공공기관에 취직하게 되는데…(두둥!) '그래, 남이 시키는 일 딱 1년만 하자.' 싶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고 엎치락뒤치락 이도저도 못하고 거의 4년을 직장에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 중에도 나의 귀농귀촌에 대한 생각은 불쑥불쑥 올라왔고, 코로나가 잠잠해질 즈음부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귀농귀촌 교육도 받고, 교육생들끼리 하는 대화 속에서 '어느 지역에 귀농인구가 많다더라~ 어디에 귀촌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다더라~' 하는 정보를 귀동냥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 주말이면 살고 싶어질 만한(?) 지역을 찾아다녔고, 며칠씩 휴가를 내고 농장에서 일꾼으로 일해보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남이 시키는 일'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사이드잡을 시작하게 된다. 플레이어로 뛰어야 하는 성향인데, 그러질 못하니 병이 날 것 같았다. 숨통이라도 틔울 요량으로 이전에 가끔씩 하던 문화기획 일을 야금야금 다시 시작했고 오히려 직장 다니기 전보다 하던 일의 범위를 늘려갔다. 그렇게 나는 '남의 일'과 '내 일' 사이를 넘나들며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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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넘게 예술가와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왔기에, 문화기획은 자연스럽게 이전 하던 일과 연관된 분야인 교육기획과 공연과 축제(행사)기획을 주로 하게 되었다. 거주지에 기반한 지역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지역예술가를 비롯해 주민들과 교류도 많이 하게 되고, 동네에서 좋은 분들과 좋은 뜻으로 '지역예술가 민간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듯 민간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면서, 연대와 네트워크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중요성과 필요를 많이 느끼게 되었다. 때마침 좋은 기회로 지역문화재단에서 지역예술가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일하게 되면서 실제로 네트워크를 발굴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경험도 쌓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내가 일부러 계획한 바는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만들어 내고 있더라는 기가 막힌 자연의 섭리랄까.

 

직장 생활 4년 만에 마침내 공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다시 프리랜서 기획자와 예술가의 신분을 회복한 나는 '향후 5년 안에 귀농귀촌을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나름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귀농이 뭔지도 모르면서 젊은 패기 하나로 귀농하겠다고 설쳐보니, '이거 만만치가 않겠는데?' 싶었다. 실제로 품삯 받고 농사일을 해보니, 기술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커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 농사일 한번 안 해 본 보통의 청년 여성이니 당연했다. 사실 농사뿐만 아니라, 사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땅도 없고, 집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을 나에게 들려줬다.

"시골엔 집도 없다. 땅도 없고, 생각보다 비싸다. 텃세가 심해 금방 다시 돌아온 사람도 태반이라더라. 2~3년은 수입 없이 지출할 대비를 하고 가야 한다."


꿀벌 스타트업 실패 이후, 나는 나도 모르게 약간 위축되어 있었고 초초무한긍정파워갑인데도 부정적인 '~카더라'통신을 많이 들으니, 이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위 귀농하고 싶어 하는 청년 기준으로, 부모님이나 하다못해 친척이라도 농촌에서 자기 땅과 기술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어야 그나마 귀농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나는 그들(농사짓는 부모님을 둔 청년)을 '귀농계 금수저'라 불렀다. 나는 부모님 포함 친지들 중 지역 연고도 전혀 없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귀농계 흙수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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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귀농은 무리인가? 나에게 시골은 헛된 꿈일 뿐인가.'
좌절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워오르던 그 때, 마침 친한 언니가 갑자기 무주로 이사한다고 소식을 전했다. 당장 연락을 했다.

“언니, 무주는 갑자기 어떻게 가는 거예요?”

“그쪽으로 이직했어. 지역에 일이 있어야 정착을 하겠더라고. 너도 너 하는 일로 일자리 찾아봐.”

 

아, 나는 왜 시골에 가려면, 꼭 귀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그동안 열심히 해왔고,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은데!!

'지금 여기 도시에서 하던 일을 시골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귀농 흙수저 서울 ‘열정도시여자’ 라라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시골탐방 다음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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