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창녕 소희X정훈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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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x정훈 with 에디터 무해

귀촌 부부 | 브랜드 '홉튼코티지' 운영 | 창녕 거주 2년 차

인스타 @hopetoun.cottage / 유튜브 Mr.시고르


보통 귀촌이라고 하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낮은 지붕의 시골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여유롭고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과. 실상도 정말 그럴까. 아내의 꿈을 따라 창녕이라는 연고 없는 곳으로 귀촌한 젊은 부부가 있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한 쌍의 커플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다리기한다. 그러면서 시골에서 자신들만의 낭만을 조금씩 키워나간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리틀' 포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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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요.

작년 함양 청년 마을에서 만나고 딱 1년 만이네요. 프로그램 끝나고 창녕에 돌아와 바로 취업을 했고 지금은 시골 직장인으로 지내고 있어요. 도시에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루틴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변한 느낌이 들어요. 퇴근 후에는 창업을 준비하고 있고요.

저는 우포늪생태관광협회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와 함께 사업을 병행하다 보니 요즘 좀 바쁜 것 같습니다.


시골에 온 뒤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니까 사실 도시에 살 때랑 전체적인 루틴은 같은데, 삶의 만족도나 세부적인 생활 패턴이 많이 달라졌어요. 일단 도시에서는 저녁 있는 삶이 없었어요. 퇴근길이 너무 멀기도 했고요. 이제는 집에 오면 6시 5분이에요. 저녁 시간이 생기니 삶의 질이 확 높아지더라고요. 남편이랑 같이 퇴근해서 요리해 저녁밥도 먹고 도시에서 안 하던 운동도 해요. 그런데도 시간이 남아요. 

귀촌하면 일단 기반이 마련된다고 생각해요. 내 집 마련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별로 부담이 없어요. 투자나 창업해서 돈을 벌 수도 있고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게 시골에 와서 달라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업도 이곳에 와서 시작한 일인가요.

처음 시골에 왔을 때 사업을 할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시골에 나름 로망을 품고 왔지만 살다 보니 도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우리야 시골에 와서 내 집 마련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제 애를 낳으려고 하니 아내와 제 월급으로는 현실성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돈 벌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죠. 

저는 스스로 무언가에 시도하고 도전한다는 자체를 거의 생각한 적이 없어요. 시골의 여유로운 환경에서 지내니까 ‘진짜 내 일이 뭘까?’ 고민하게 됐고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기반 삼아 우리 브랜드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럼 브랜드 이름은 뭐로 짓지?’ 이런 상상을 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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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네요.

사실 도시에서는 아이 가질 생각도 없었어요. ‘남편과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으면 귀엽겠다’ 정도였죠. 시골에서 만난 언니의 아이들 양육하는 모습과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예요. 지금 내가 누리는 삶이 마음에 드니까 이걸 아이랑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든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오히려 아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말이에요.

도시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애를 낳고 키울지 아주 막막했죠. 어떤 사람은 시골이 아이를 기르기 힘든 곳이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저희는 오히려 시골이 사교육도 덜하고 친환경적이니까 아이를 아이답게 키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도 좋은 환경이라는 판단이 드니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죠.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했을 때 저에게 도리어 자신들은 읍내 아파트에서 사는데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보통 ‘귀촌’이라고 하면 10명 중 9명은 자연과 가까이 있는 시골집에서 사는 삶을 상상할 것 같더라고요. 남편이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 댓글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분이 있었어요. 우리가 창녕군으로 이사를 왔지만 삼십평 대 아파트에 사니, 저게 무슨 귀촌이냐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인터뷰해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같은 경우도 있다고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거든요. 만약 우리처럼 시골에 연고나 경험이 없으면 읍내 아파트에 살면서 천천히 지역에 스며드는 단계적 귀촌도 나쁘지 않다고요.

저희는 읍내 아파트에 살면서 시골에 누릴 건 다 누리니까 정말 만족해요. 도시에서만 살던 청년들이 무턱대고 바로 시골집에 산다면 진짜 힘들어요. 


나중에 시골집으로 이사할 계획도 있는 건가요.

저는 아파트가 약간 좀 답답해요. 콘크리트 건물이기도 하고요. 보통 집이라고 하면 내부만 생각하는데 마당도 집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원을 만들어 꽃도 심고 텃밭도 기르고 마당에 닭이랑 염소도 풀어놓고 싶어요. 환상적인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삶을 즐겨보고 싶어요.

정 저희가 올해 초 세컨하우스로 촌집을 마련하려고 사방팔방 돌아다녔는데 결국 집이 없어서 구하지 못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집은 굉장히 낭만적이잖아요.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잘 관리되거나 개조된 곳은 잘 없어요. 촌집에 살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지만, 귀찮아서 관리하지 않고 빈집으로 둬버려요. 게다가 연세나 월세는 보통 지인들에게 주니까 매매가 기본 거래인데, 촌집은 한 번 사면 되팔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죠.

그런데도 저희가 시골집에 살고 싶은 이유는 오히려 불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도시에서는 삶이 많이 편해져 여러 과정이 생략되잖아요. 예를 들어 요리할 때 요즘은 만들어진 간편식을 부어서 끓이기만 하면 끝이에요. 요리하는 기쁨이 딱히 없죠. 내 손으로 하는 작업이 간소화되니까 과정에서의 보람과 기쁨이 같이 사라져요. 지금도 저희가 텃밭을 가꾸는데 밭을 일구고 그곳에서 나는 작물을 먹는 과정에서 기쁨이 분명 존재하거든요. 우리가 촌집에 살게 되어 아궁이 불을 때고 방을 데우는데 1~2시간이 걸려도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여유와 낭만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촌집에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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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만의 특색이나 이점이 있나요.

솔직히 지역에 대한 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창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점은 크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 동아리 같은 대외 활동을 많이 해서 이웃이 많이 생겼거든요.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누려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여기 와서 적응해야 하니 저 나름대로 노력을 했죠. 직접 동아리를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을 만나야겠다. 군청에서 마침 청년 동아리 사업을 하길래 신청했어요. 1년에 200만 원짜리 사업에 선정돼 작년부터 1년 동안 통기타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왜 지역 주민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중요한 건 지역 자체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적응해서 사는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네팔에 1년 2개월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결국 3개월 뒤에는 그곳도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때 장소보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제 삶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여기 와서 적응하려면 관계를 만드는 게 제일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창녕에 온 3일 만에 동아리를 만들게 됩니다.

제가 창녕에 와서 아직 숨도 안 골랐을 때죠. 이사 오기 전에 벌써 동아리 신청서를 다 만들어놨더라고요.

처음에는 회원 모집도 안 되고 공간도 구하지 못해서 혼자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어요. 1년쯤 되니 정기적으로 오는 분들도 많이 생기고 동아리가 일상의 낙이라는 분들도 계셔서 지금은 뿌듯하게 하고 있죠. 동아리 덕분에 여러 이점이 많아요. 지금 다니는 직장도 회원 분이 추천해주신 곳이고, 반찬도 가져다주시고 택배도 맡아주세요. 아무래도 서로 챙겨주는 일이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많거든요. 항상 둘러싸여 있는 느낌 때문에 이웃이 생겼다는 기쁨이 있어요. 

그게 주는 행복이 저는 좀 큰 것 같아요.


이웃이라. 도시에서는 진짜 사라진 단어잖아요.

이웃이 없죠. 옆집도 모르는데. 우리 어렸을 때는 있었잖아요. 옆집 윗집, 동네 친구들과 같이 바깥에서 놀고.

 아파트 청소할 때도 맨 위층에서 물 뿌리면 아래층에서도 다 같이 하고 그랬는데.

요즘 세대는 친구 관계에 둘러싸여 지내는 건 익숙하지만 이웃이라는 관계에 둘러싸인 경험은 많이 없거든요. 옛날에 사회복지가 없었을 때는 이웃이 그 역할을 했어요. 옆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이웃들이 와서 도와주고 그랬죠. 이웃이 정말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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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꿈이나 목표, 바라는 모습이 있을까요.

계획은 딱 두 가지예요. 일단 새로운 가족 꾸리는 일.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자연 속에서 뛰어놀던 추억은 짙게 남아 있는데 그 외의 시간은 잘 생각이 안 나거든요. 시골에서 아이를 키워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게 첫 번째 꿈이고, 두 번째 꿈은 내 속도대로 천천히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싶어요. 급하게 하면 잘 되려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평생 직장인으로 살다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뭔가를 도전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돈이 사실 목표에요. 근데 목표보다 목적이 그 위에 있는 거잖아요.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돼서 시골의 로망을 다 이루고 싶어요. 그러니까 시골의 삶이 영화처럼 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여태껏 구축해 온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며 작고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곳의 삶이 더 편안해요. 오감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커요. 그동안 '느낀다'라는 것에 많이 굶주리며 살았나 봐요. 하지만 귀촌한다고 해서 갑자기 어마어마한 행복과 낭만이 주어지는 건 아니에요. 시골은 유토피아가 아니니까요. 이에 대한 기대보다는 스스로 일궈나가는 주체적인 삶에 만족하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만족감이요.

귀촌이 너무 로망 프레임에 가둬져 있다고 생각해요. 귀촌도 충분히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형태이고 대안적인 삶이다, 그러니 청년들이 시골에 와서 내 집 마련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애도 낳는 이런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했으면 해요. 우리라고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고 나름 현실적으로 살고 있거든요. 시골살이에 대해 보통 사람들도 그렇고 우리도 약간의 판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귀촌이 동화적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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