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남원 놀룩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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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룩 with 에디터 무해

예술가 | 귀촌 부부 | 남원 거주 5년차

인스타그램 @nollook_

유튜브 https://youtube.com/@nollook_


'일단 놀고 본다'는 뜻의 놀룩(Nollook)은 주변에서 베짱이 부부라 불린다. 틈만나면 텃밭을 배경으로 춤을 추고 시골집 기와지붕 아래 그림을 그린다. 하루종일 놀며 하고 싶은 것만 할 것 같은 이들에게서 진짜 이야길 들었다. 


한 번도 배운 적 없지만 춤과 노래가 그저 좋았던 서울 여자 ‘세현’,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쫓아 서울로 갔던 김해 남자 ‘창현’. 두 사람이 작은 시골집에서 지독히 고민하며 내면의 예술성을 고이 피어 올리기까지. 내 눈치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들만의 빛깔을 다듬어 뚜벅뚜벅 나아가는 모습은 베짱이보단 수행자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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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으로 귀촌한 지 5년 차 되셨어요.

 세현과 같이는 5년 차, 저는 6년 차 됐어요. 1년 정도 제가 먼저 내려가 있고 결혼해서는 바로 같이 살았죠.

 시간이 훅 지나간 것 같은데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엄청 많은 일이 있었어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는 적응하는 데 되게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3년 정도 되니까 조금 적응이 됐고 또 많이 변화가 생겼어요.


시골에 와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궁금해요.

 귀촌 1~2년 차에는 학교로 예술 교육 수업을 많이 다녔는데요, 차도 없었는데 진짜 열정 하나로 엄청나게 큰 컨테이너 박스에 이것저것 다 넣어서 11개 초등학교를 돌았어요. 다들 ‘어디 가?’ 물으면 ‘저희 놀이 수업하러 가요!’라고 했죠. 그렇게 2년 정도 수업하는데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학교 측에서 이미 짜놓은 수업 방식이 우리 스타일이 아니라 불편한 점이 많았거든요.

3년 차에 코로나가 터진 게 좋은 빌미가 됐어요. 이대로라면 우리 스타일이 아닌 채로 계속할 것 같아서 수업을 잠시 쉬고 창작 활동에 몰입하기로 했거든요. 놀록만의 스타일을 좀 더 구축해 보자 싶었죠. 그동안 저희 것을 많이 쌓았어요. SNS도 열심히 하고 곡도 내면서 대중에게 춤추는 커플이구나 제대로 알리게 된 것 같아요. 아예 아티스트 쪽으로 전환한 거죠.

놀이 수업을 오래 했고 거기에 시간도 많이 썼는데 언젠가부터 저희가 사람들에게 '춤추는 부부'로 인식돼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는 귀촌해서 사는 의미나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해질 수 있을지 등을 서로 열심히 얘기한 시기였거든요. 춤은 그저 우리의 작은 일상 정도였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엔 저희의 춤추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나봐요.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데 이유가 있겠다 싶어서 저희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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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활동이 주요 수입원 아니셨나요.

 맞아요. 완전 주요 수입원이었고 그때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돈이 막 넘쳐날 정도였어요. 근데 그만큼 피곤하니까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도 어렵고 그냥 사 먹고 가자, 하면서 외식도 많이 했죠. 교육 활동을 중단하면서는 수익이 딱 끊겨서 적금해 둔 걸로 버텼어요. 1년 안에는 방법을 찾겠지 싶었죠. 근데 웬걸, 1년 지나니까 적금만 다 까먹고 상황은 해결이 안 된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 1년은 진짜 고난의 행군이었어요.


생계 활동을 병행하지 않고 아예 접은 이유가 있나요.

세 돌아갈 곳이 없어야 우리가 무언가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일종의 '안 움직여 보는 연습'이기도 했고요. 사실 시골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거든요. 퇴사해서도 부모님께 손 벌리기 않기 위해 계속 알바하고, 통장 잔고가 100만 원 이하로 떨어지는 건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제가 일을 멈춘 건 큰 용기였죠. 지금도 집에 가면 이렇게 쓰여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게으름이라는 단어에 속지 말자’. 사실 창작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까 배수의 진을 친 거였죠.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엄청 힘들었어요.

 진짜 불안감 최고조였어요. 생계 활동이 없는데 옆에서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게으르다고 하지마라, 일부러 멈추어 선 거다~' 하니 많이 답답했죠. 혼자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사실 저희 활동을 토대로 제대로 일을 구상하고 계획해 본 경험이 없어서 너무 막막했어요. 옆에서 세현이 도와주길 바랐는데 그렇지 못하니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의도치 않게 극단적인 수행의 시간을 가지게 됐죠.


어떻게 극복했나요. 앞서 말씀하신 대로 불안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요. 

 모든 돈이 끊겼을 때가 딱 4년 차였거든요. 안 그래도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하지?’ ‘알바해야 하나?’ ‘아니 그래도 알바는 아닌 것 같아’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그때 거짓말처럼 방송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조회수 10회짜리 영상을 보고요. 시골길에서 버스킹하는 유튜브 영상이었는데 독특한 부부인 것 같아 촬영하고 싶다고 했죠. 첫 촬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작년 1년 동안은 방송을 진짜 적극적으로 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싶어서 여기저기 들어온 제안은 거의 다 수락했는데, 제일 배고프고 쥐뿔도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러는 사이 춤편지도 생기고 우리 곡도 만들어졌어요. 예전과 같이 돈은 없어도 지금은 우리 콘텐츠가 있는 상태에요. 힘들게 투자해서 이렇게 만들어진 거죠. 조금 허술해도 건물 하나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생뚱맞은 제안이 아니라 올해부터 조금씩 우리가 뿌린 씨앗 안에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점점 하고 싶은 것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기니 엄청 의미 있죠. '그동안 맞는 방향으로 갔구나. 이제 뿌리 내리고 있구나' 싶었어요. 돈이 없는 건 여전히 걱정되지만 이전만큼 불안하지 않아요.

 맞아요, 늘 걱정하고 있어요. 우리 목표가 10곡 정도 채워서 정규 앨범 내는 건데, 지금 4곡 발매했거든요. 이제 6곡 남았으니까 희망이 있는 거죠. 앞으로 내 콘텐츠로 활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감이 잡혀요. 예전에는 진짜 상상도 못했거든요. 지금은 '(목표에) 닿을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지만, 해보고 해보려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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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던 춤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춤편지는 저희의 신나고 꿈틀꿈틀 대는 에너지를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춤을 잘 추거나 어떤 동작을 외우기를 바라지 않고 그냥 흔들고 싶을 때 흔들어도 된다, 그냥 지금 여기서 이 노래에 맞춰서 움직이고 싶은데 그렇게 움직이게 그냥 두세요, 라는 메시지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춤편지를 보낼 때도 잘 추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그 분위기에 젖어서 흥 그대로 추려고 하거든요. 신나는 음악에도 춤을 추지만 차분한 노래에도 춤을 춰요. 꼭 신나게만 춤을 출 필요가 없으니까요.

편지는 일주일에 두 번 발송해요. 3~4분 정도 되는 영상과 춤에 맞는 그림을 그려서 같이 보내고 짤막하게 오늘의 주제에 대해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 BGM 리스트까지 세트로 보내드리고 있어요. 구독자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댄스파티도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하고 있고요. 이제 1년 반 정도 했네요.


독자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춤을 구독한다는 게 너무 생소하잖아요. 게다가 엄청 멋있고 댄서처럼 절도 있게 추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봤을 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초반에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지 못했고요. 1년 반 정도 해오면서 장기 구독자가 많아지고 신기하게 연령대도 30대, 40대, 50대로 다양해졌어요. 50대분들의 참여가 저는 되게 신기한데요, 생각보다 무척 적극적이고 온라인 댄스파티에도 자주 참여하세요. 춤편지가 자유로움을 끄집어내 주는 힘이 있나 봐요. 저도 이제 그걸 서서히 느끼는 중이에요.

 연세 있으신 분 중 우리를 잘 모르는 분들은 ‘젊으니까 저렇게 할 수 있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근데 반대로 ‘내가 저렇게 살았어도 괜찮았구나’라고 보시는 분들이 결국 구독자로 남는 것 같아요. 저희를 통해 과거에 자신이 살고 싶었던 모습을 확인하고 지금부터라도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고, 또 그렇게 살아보고자 하는 저희를 응원하는 마음이 겹치면서요. '자유로운 에너지를 나누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라는 우리의 메세지가 그분들의 삶에 다가가는 부분이 있었던 듯해요.


시골은 예술 활동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하나요.

 성향에 따라 다를 텐데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영감받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시골이 무척 답답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도시도 나쁘지 않았지만 시골에 있을 때 좀 더 제 감정이나 감각이 잘 느껴지고 들여다보게 돼서 창작 활동이 잘 돼요. 저는 전반적으로 잘 맞아요.

 저는 시골에 대한 로망이나 관심이 아예 없었어요. 도시에서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시골도 도시도 다 참 매력이 있는 곳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됐죠.


시골에서 예술 활동으로 생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저희도 5년 차지만 그걸 해결하지 못했거든요. 우리도 과정 중에 있고 쉽지는 않지만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 열중하고 사랑하는 것에 시간을 쏟는 게 오히려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고 더 현실이 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고 믿어요.

도시와의 차이라면, 시골 생활에서 나가는 비용이 적다 보니 우리가 좀 더 예술 활동에 매진할 수 있다는 장점은 확실히 있어요. 

시골에서 예술을 하려면 예술로 생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술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예술로 돈을 벌려고 하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활동이 방과 후 수업밖에 없어요. 이미 짜여 있는 틀이죠. 아무래도 농사가 일상에 더 중심에 있는 분들이라 즐길 수 있는 범위의 예술이 한정돼 있어요. 예술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은 예술 회관을 만들어서 뭔가 없던 생산을 만들어내던가, 문화적 행위로 붐을 일으키거나, 내가 사는 곳을 문화적 발원지로 만드는 등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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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예술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나요.

 예술 활동으로 고민하는 친구들이 얘기하고 싶어서 저희를 많이 찾아와요. 그 친구들과 대화하면 결국에 우리의 고민은 거의 다 비슷해요. ‘불안하고 힘든 데 계속하는 게 맞을까요’ 라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하는 얘기는 ‘우리 그래도 가자’고 하거든요. '우리가 힘든 길 가는 거 맞고, 그래서 힘들 수밖에 없고, 그래도 우리 이거 아니면 안 되니까 가자'고. 이제는 안 가는 게 더 힘들어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냥 가야 하는 거지. 같이 갑시다!

 최근 들어 진짜 선물 같은 일이 이거예요. 우리가 우리 창작물을 만들려고 애쓰는 건데 주변 사람들이 자극받는 거예요. ‘나도 그거 하고 싶었는데’ 라든지 ‘나도 해볼까’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우리가 하는 모습에서 용기를 얻거나 자극을 받아 사람들이 창작 활동을 하는 현상을 봤어요.


놀룩은 결국 어떤 집단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1년 차 때부터 놀룩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게 진짜 어려웠어요. 예전에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그분이 맨 마지막에 이렇게 글을 달았어요.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저는 그 말이 너무 맞는 거죠. 왜냐면 우리는 그냥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에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는 아무래도 춤이 중요해요. 춤으로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 받으니까요. 즉 저희는 춤과 노래로 사람들이랑 에너지를 나누고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에요.

창 일단 놀고 봐야죠. 힘들 때는 힘들다고 표현하면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 볼 거예요. 과거에 남의 눈치 보며 사회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고 괴로워하고 또 스스로의 기준까지 높아져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세상을 원망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많이 썼어요. 그래서 이젠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내가 원한 삶을 살아보라는 응원과 지지를 스스로에게 건네요. 그게 곧 ‘놀룩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놀룩의 방향이나 꿈은 뭘까요.

일상을 건강하게 잘 살면서 그 안에서 다채로운 활동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춤은 계속 추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에너지를 담은 노래도 만들어 나가고요. 저희의 건강한 에너지를 계속해서 나누며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저희가 먼저 건강해야겠죠?

누군가의 마스코트나 교주가 되고 싶진 않아요. 다만 아침에 건강하게 눈 뜨고 건강한 방식으로 세상에 대처해 나가며 살고 싶어요. 이건 만고불변의 저희 소망이고, 또 세현과 둘이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요. ‘놀룩 아트센터’를 만들어 자유로운 탐구욕과 표현을 응원하며 함께 나아가는 공간을 떠올려봤는데, 왠지 그런 방향의 꿈을 그리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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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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