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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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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이주에 이름을 붙인다면 |
서울에서 영월로 이동한 작업실 테이블에 앉아 종종 생각한다. 나의 시골 이주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작품에 가까울까? 낯선 미국으로 떠나 잡초처럼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나리> 가족? 아니면 연애·취업·결혼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멈추고 자연 속에서 삼시 세끼를 자급자족하는 <리틀 포레스트> 혜원이? 100만 엔이 모일 때마다 농장이든 바닷가 마을이든 자신을 모르는 먼 곳으로 이동하는 <백만엔걸 스즈코>의 스즈코상? 글쎄, ‘바로 이거야!’ 말하기엔 어쩐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낯선 환경으로 이동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곳에 뿌리를 내릴 생각은 없다. 도시의 삶이 마음처럼 되지 않은 적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시골의 삶이 내 맘 같던가? 전혀. 더군다나 100만 엔이 모일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젊음의 에너지가 나에겐 없다. 나는 그저 밀려나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에 깃발을 꽂고 내 할 일에 몰입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주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런 수식어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코로나 감염 사태를 계기로 매일 출퇴근하지 않아도 괜찮은 근무 환경, 한 뼘 더 자연스러워진 비대면 소통이 지역 이주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니 ‘코로나 이주’라고 할 수 있겠다. 지도를 펼쳐 서울에서부터 2시간 안팎의 반경을 컴퍼스로 빙 그리듯 동서남북을 훑으며 적당한 지역을 골랐으니 ‘가성비 이주’이기도 하다. 도시가 싫어서 탈출한 것도 아니고, 꼭 영월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 틈을 타 보폭을 크게 디뎌보자고, ‘시골살이’라는 난이도 높은 도전을 미루지 말자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은 그보다 훨씬 쉬울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말도 안 되게 발을 쭉 뻗은 지금은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지만, 이 길 끝에서는 어떤 환경이 되었든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내가 만들어질 것이다. 길어진 보폭만큼의 선택지를 삶의 반경으로 품을 수 있을 거라는 모험심, 혹은 반항심. 말하자면 그게 내 이주의 배경이다.
서울이라는 프리즘으로 비춰본 나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의 여유를 찾아 떠난 낭만주의자이다. 시골이라는 프리즘으로 비춰본 나는, 도시에서 온 실패자이자 지원금 사냥꾼이다. 아무렇게나 덧씌워지는 말과 짜깁기된 맥락, 그게 금세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는 시골의 분위기, 이런 것들에 휘둘리다 보면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나는 누구인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주를 설명하는, 꼭 알맞은 이름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전입신고보다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코로나 이주와 가성비 이주. 낭만기를 쏙 뺀 담백한 두 단어를 시작점 삼아 당분간은 작업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름을 찾아볼 작정이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스스로 삶의 맥락을 붙잡아 건져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잣대로 삶을 재단 당하기 십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