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제주 강나루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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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with 에디터 원영

씨앗매개자, ‘씨앗바람연구소’ 운영 | 제주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운영위원장 |

언니네텃밭 제주 동드레공동체 대표 | 전국여성농민회 제주연합 활동

인스타그램 @jejunalu


유연함과 단단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많은 이들과 삶의 토대가 되는 무형의 씨앗까지도

나눌 수 있는 거 아닐까.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떠올렸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토종씨앗을 미래로 전달하는 사람. 

그는 지금, 제주에서 어떻게 자기 삶을 창조해나가고 있을까.


‘씨앗매개자’라는 직업이 낯선데,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토종씨앗을 연구하고 경험하면서 우리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유무형의 씨앗들을 이어가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씨앗을 심어 거두기까지 겪는 경험들, 그리고 주변의 농부님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알아가는 것들을 토대로 움직이죠. 씨앗매개자의 워크숍을 통해 씨앗과 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국여성농민회(이하 전여농)’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를 총괄 운영하는 활동을 통해 농부님들과 교류하면서요. 유동적인 방식으로 농사짓고 활동들을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중심엔 늘 씨앗이 있고, 선조들의 삶과 문화로서 오래 이어져 온 씨앗들의 가치와 의미를 전하고자 합니다.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겨난 건가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관심이 식재료에서 자연스레 씨앗까지 이어졌어요. 처음엔 저 혼자 토종씨앗의 매력에 빠져서 소위 덕질하듯이, 씨앗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씨앗을 깊이 알아갈수록 나 혼자만의 재미뿐 아니라 작게나마 주변을 바꿀 수도 있을, 의미 있는 일이겠구나 싶었죠. 씨앗 이야기를 주변과 나눌 수록 저도 더 재밌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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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으로 농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씨앗매개자’라는 길을 새로 만드셨네요.

처음에는 ‘반농반X’를 꿈꾸기도 했어요. 여성농민회 일원이 되어서 ‘언니네텃밭’ 꾸러미를 통한다면 시중에 유통이 어려운 토종 작물도 사람들과 나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시절에는 저 스스로를 ‘텃밭 유목민’이라고 불렀죠. 제 땅이 아니었다 보니, 땅 주인이 원하면 밭을 비워줘야 해서 늘 작은 밭들을 전전하며 농사지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농사짓는 방식은 기계 없이, 오로지 풀과 자연의 힘만 빌리는 터라 꾸준히 제 밭농사를 이어가는 게 여러가지로 어려웠어요. 처음 하는 일이니 그랬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당시엔 몸도 많이 상했고요. 점차 농부들만큼 품과 시간을 들여 농사짓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밭에서 보내는 시간은 눈물 날 만큼 행복하더라고요. 밭에서 수확하는 결과물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밭에서 보내는 일련의 과정들과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그것들을 예술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샘솟았어요.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주변에선 오히려 궁금해지는 거죠. ‘저 사람은 직업이 뭐지?’ 


주변에서는 아리송했을 것 같아요, 밭에서 농사를 짓는 건지 뭘 만드는 건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낄 즈음에 대산농촌이 발행하는 매거진에 에세이를 실을 기회가 생겼어요. 글을 통해 내가 왜 ‘씨앗매개자’가 되기로 했는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나를 설명하는 언어를 정리할 수 있었죠. 돌이켜보면 밭에서 오롯이 쏟아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그때 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지 않는 옷과 익숙하고 편한 옷이 무엇인지 알게 됐으니까요. 그 뒤로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나다운 방법과 표현을 찾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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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하필 ‘제주도’였나요.

저는 순수예술을 전공한 뒤로 쭉 공공예술 관련 분야에서 일했어요. 그땐 막연히 30대엔 돈을 열심히 벌고, 40대엔 도시가 아닌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가치는 아니구나, 그럼 40대까지 미룰 필요는 없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저에겐 제주도가 도시와 시골 그 사이 어디쯤 있는 듯한 분위기가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깊은 자연을 품고 있는 동시에 지방 소도시 같은 모습도 갖고 있어서 거부감이 덜했죠. 처음부터 무작정 시골로 혼자 가기엔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거든요. 11년도부터 2~3년 동안 제주를 오가면서 여행자도, 이주민도 아닌 채로 경계에서 ‘내가 진짜 도시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탐색의 시간을 보냈죠. 여기에서라면 나 혼자서도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제주로 내려왔는데, 신기하게도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우연한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낯선 환경에서 처음 짓는 농사가 막막할 때엔 누구에게 조언을 얻었나요.

잘 모르겠는 건 주변 농부 언니들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농부의 마음으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분명 농사짓는 행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 스스로는 작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을 거예요. 물론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다양한 토종씨앗을 하나라도 더 심어보는 것,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어요. 그 시간이 쌓여 씨앗 한 알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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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농에서 만나는 농부 언니들이 나루 님에게 큰 힘과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 전여농을 만난 건, ‘토종 추수 한마당’에서 였어요. 그때, 저는 너무 놀랐어요. 재밌고 의미 있는 행사인데, 구경하는 사람 대부분 관계자들뿐인 거예요. 제주 곳곳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에 늘 사람이 북적이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죠. 그때 생각했죠, 내가 여성 농민들에게 뭐라도 쓰임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당시 전여농 회장님이 꼭 농사짓지 않아도 전여농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어요. 활동하면서 토종씨앗뿐 아니라, 여성 농민의 세계에 대한 저의 시야도 차츰 넓어졌죠. 토종씨앗이 지금은 관심 있는 개인들간의 나눔으로 이어지지만, 옛날에는 마을 안에서 공유자원처럼 주고받는 것이었어요. 결국은 공동체 활동 자체가 그 지역의 든든한 토대가 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어요. 


농사, 전여농 활동, 토종씨앗 워크숍 진행까지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저의 성향상 규칙적인 일을 반복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과 재미에 따라 유연하게 일하는 것이 잘 맞는 편이에요. 관심 있는 한 가지도 전문적으로 깊이 파고들어가기보다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는 것에 재미를 느껴요. 물론,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되고 나서 ‘일’과 ‘쉼’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어요. 애초에 그 두 가지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 노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즐거운데 의미까지 있는 일을 하기가 어디 쉽냐고. 즐겁고 의미까지 있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 틈틈이 짬을 내서라도 제주 숲에서의 산책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일상의 균형을 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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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경험하는 제주는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은데, 나루 님이 토종씨앗을 통해 바라본 제주는 어떤 곳인가요. 

지금 우리 시대에 토종씨앗이 사라지는 데에는 먹거리 농업 등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아주 다양한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주를 예로 들자면, 제주는 급격한 이주민 증가로 타운하우스 단지 등 신축 건물이 급속도로 빠르게 늘어났어요. 전통적인 제주 집은 안거리와 밖거리 그리고 우영팟(텃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새로운 주거 형태로 급변하면서 자연스레 그 땅에서 오래 이어져 온 씨앗들도 사라지게 되는 거에요. 중산간 마을 등 제주 전역으로 다니는 토종종자 실태조사처럼 직접 현장에서 씨앗을 보고 듣고 겪는 경험은 토종씨앗 문화가 혼재하는 제주에서 지역성을 떠나 더 널리 씨앗 보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씨앗매개자로서 앞으로 어떤 유무형의 씨앗을 심고 싶은가요. 

앞으로도 ‘씨앗바람연구소’에서 사람들과 씨앗, 씨앗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전에는 밭에서의 생각과 풍경을 <일상의 씨앗들>이라는 책과 전시로 나누었다면, 앞으로는 <씨앗들의 일상>을 더 면밀하게 전하고 싶어요. 토종씨앗 이야기뿐 아니라 더 넓은 범주의 '무형의 씨앗' 이야기까지요. 누구나 스스로 삶의 가치나 철학을 세울 때에 토대가 되는 씨앗도 ‘무형의 씨앗’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왜 토종씨앗을 이어가야 할까요. 그 선택이 우리 내면에 무엇을 심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선택할 건지, 왜 불편함을 감수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무형의 씨앗으로 나누고 싶어요. 올 가을, ‘시골언니 프로젝트’에서 2030 여성들을 만나는 시간도 저에게는 무형의 씨앗을 나누는 일이에요. 유형의 씨앗을 넘어 자신만의 씨앗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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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이에요. 토종씨앗과 제주 살이가 강나루 개인에게 가져온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크게 변한 게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멋있는 대답이네요. 주변 환경과 활동이 변할 뿐, 강나루라는 사람은 언제나 단단히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런가요?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는데.


유연한 단단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감각하는 무형의 씨앗까지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렇게 봐주신다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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