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 군산 김나은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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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with 에디터 원영

‘우만컴퍼니’ 대표 | 군산 거주 6년 차

인스타그램 @wuman.official


“우리들의 이야기가 계곡처럼 늘 흐르게 하고 싶어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우리가 발디딘 이곳, 지금을 살아가는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가 늘 흐르게 하고 싶다는 우만컴퍼니, 곧 김나은은  

계속해서 사람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잃지 않을 방법을 모색한다. 


마르지 않는 호기심으로 그가 발견한 이야기들이 

지금, 그로부터 당신에게로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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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만컴퍼니’와 개인 김나은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우만컴퍼니는 ‘우리가 만났을 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의 준말이에요. 슬로건에서 느껴지듯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주로 페미니즘 문화 행사를 기획⋅진행하고,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 콘텐츠로 만드는 활동들을 해요. 저 혼자 운영하는 사업체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그때그때 맞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일하고요. 저는 요즘 어딜 가나 해초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해요. 큰 대의를 생각하는 활동가, 대표 이런 것보다는 군산 시민으로서 하나의 해초처럼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거든요. 


어쩌다 해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처음의 우만컴퍼니는 재밌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게 시작이었어요. 그러다 점차 규모가 커졌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우만컴퍼니 운영에 뛰어들면서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저와 제 주변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커요. 규모가 커질수록 우만컴퍼니가 하는 행위 속에서 누군가는 큰 대의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활동의 명분이나 대의에 연연하기보다는 우리가 설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서 출발하자 다짐하면서 조용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바다의 흐름에 유영하는 해초를 떠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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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만컴퍼니의 출발점이 되는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우만컴퍼니로 자리잡기까지 어떤 궤도를 지나오셨는지 궁금해요. 

군산에 내려왔을 때, 같이 읽고 싶은 책을 다루는 독서 모임이 없더라고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누군가는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어 2019년에 페미니즘 독서 모임 ‘보다’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늘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면 서울에 가야한다는 걸 깨닫고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를 군산에서 공동체 상영해볼까 일을 벌이기 시작한 게 우만컴퍼니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죠. 영화제에서 봤던 배꽃나래 감독의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과 강유가람 감독님의 <이태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특히, 영화 <이태원>은 정말 볼 수 있는 곳이 없었거든요. 함께 본 영화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억이 참 힘이 되더라고요. 이후, 지원 사업들을 받으면서 영화 GV, 인문학 강의, 북토크 등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확장하다  2020년에 우만컴퍼니를 시작해 지금까지 왔네요. 


우만컴퍼니가 첫발을 떼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이 있었네요. 그렇다면, 나은 님이 군산에 온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전까지 여러 지역을 전전했어요. 고향은 경상북도 영천이지만, 대학은 대전에서 다녔고 군산에 오기 직전엔 잠깐 서울에서 살기도 했죠. 대학교를 졸업한 뒤, PD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에만 군산에서 지낼 생각이었어요. 어머니가 먼저 군산으로 오셨는데, 저도 따라와 가끔 머물다시피하며 살다 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저는 애초에 복잡한 도시 살이에 대한 열망도 없었고 제가 원하는 삶의 패턴과 규모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건 중소 도시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군산이 딱 그렇더라고요. 수도권으로 가는 교통이 불편하지 않고 영화관도 있는데다, 산과 바다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군산의 일몰 풍경에 반했어요. ‘군산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일자리와 집을 구해 군산 살이를 시작했죠. 처음엔 풍경이 아름다워서 군산이 좋았다면, 군산에 살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 군산 사람과 지역의 이야기가 군산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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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 품은 이야기가 군산 살이의 재미를 더해준 셈이네요.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지역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뭔가요.

‘지역 여성의 이야기를 할 거야.’ 라고 다짐했다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일상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궁금했고,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어요. ‘주변의 여성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요. 내가 발디딘 군산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계속 궁금해요. 

이건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한번도 스스로를 ‘청년’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이로 따지면, 청년은 맞죠. 하지만, 대부분 사회에서 말하고 만들어내는 ‘청년’ 범위 안에 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청년으로 대표되는 이미지가 남성 중심적이고, 내가 청년으로서 겪는 이야기는 회자되지 않는 느낌이었죠. 2014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관통하면서 어렴풋하게 느끼던 불편함들을 언어화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와중에, 나의 여러 정체성 중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제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 거죠.


지역 여성의 이야기를 만나고, 그 이야기를 다시 누군가와 나눌 때에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계곡처럼 늘 흐르게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이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누구에게 가닿길 바라는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항상 고민해요. 보기엔 휘황찬란해도 누군가에게 혹은 적어도 저에게 의미가 없다면, 형식적인 활동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흘러가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만컴퍼니가 발신하는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누구에게 가닿길 바라나요. 

군산은 인구가 20만이 조금 넘는 소도시인데다 산업도시예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생활상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여성들끼리 뭔가를 한다는 것, 그 울타리 안에서 내가 꺼내고 싶었던 여성에 대한 의제가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기록되고 텍스트로 보여진다는 것이 지역 여성들에게 하나의 해방구처럼 느껴지면 좋겠어요. ‘내가 혼자는 아니구나, 지역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요.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럼 나도 뭔가 찾아서 해볼까’ 하고 어디에서든 하고 싶은 활동들을 발견하길 바라요. 누군가에게는 왜 여성 얘기밖에 안 하는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목말라 있을 거예요. 목마른 분들에게 가닿길 바라는데, 가닿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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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가닿았죠. 그러니, 저도 이렇게 나은 님을 찾아왔죠. 우만컴퍼니의 지난 고민들을 돌아볼 때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내가 말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공감해줄까,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걱정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요즘에는 ‘무슨 의미를 담고 싶지’ 고민을 많이 해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 나에겐 어떤 의미를 남길까, 우만컴퍼니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사이드 프로젝트일 때와 달리, 사업으로서 우만컴퍼니를 키워봐야겠다 마음먹고 나니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우만컴퍼니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돈을 버는 것, 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사업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우만컴퍼니가 뚜렷한 정체성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 안에서 어떤 대표성을 띠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우만컴퍼니를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인데, 지금이 이런 고민들을 하기에 딱 적절한 시점인 것 같아 한창 골몰하고 있어요. 


우만컴퍼니를 운영하면서 생기는 고민들을 혼자 감당하기엔 때로 버겁지 않나요.

혼자 우만컴퍼니를 운영하지만,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친구들이 함께 방향성을 고민해주기도 해요. 일종의 자문 위원 같은 존재죠. 때로는 근처 독립서점 ‘마리서사’ 사장님이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요. 고민의 종류도 다양하잖아요. 브랜딩, 콘텐츠의 미감 등 혼자서 앓으면 오히려 고민에 갇혀버릴 때가 있으니까 저의 시야를 확장해주거나 더 깊이 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려고 해요. 다행히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고요. 


그럼에도 우만컴퍼니가 ‘이것만큼은 잘해냈지’ 자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래도 지역과 여성을 연결하는 지점을 잘 만들어 나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지역에 대단히 화려한 변화를 가져오진 않아도 꾸준히, 여성 동료들을 모으고 이야기를 발굴해내는 일들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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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만컴퍼니와 같은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 지역 살이가 더 재밌어질 것 같아요. 나은 님은 어떤가요, 군산 살이가 여전히 재밌나요. 

저는 군산의 규모가 딱 좋아요. 물론, 제가 사랑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관광객이 더 많이 오면 좋겠다, 시장 분위기가 조금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지만요. 가끔 문화 생활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엔 대전이나 서울에 가요. 관계성을 타지역과 놓지 않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군산의 풍경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군산에 사는 게 여전히 만족스러워요. 삶의 규모적인 면도 무시 못하죠. 서울에서는 전세 겨우 얻을 돈으로 여기에선 아파트를 살 수 있으니까요. 삶의 안정감이 확 다르죠. 대도시와 접근성이 나쁘지 않은 곳, 중소 도시 정도의 한적함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군산 살이가 꽤 마음에 들 거예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또는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우선, 앞두고 있는 '선들 페스티벌'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무엇을 하든 우만컴퍼니의 연속적인 맥락 안에서 융화될 수 있게,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참여자들이 즐거웠다고 기억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우만컴퍼니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하다 말겠지’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응원해주세요. 그 응원들에 저도 더 ‘우만컴퍼니를 잘 돌봐야겠구나’ 생각해요. 우만컴퍼니가 잘 컸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고갈되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과 세상을 궁금해 할 때에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거든요. 제가 정체되면 우만컴퍼니도 정체되더라고요. 지역 여성들을 위한 프로젝트들은 누구보다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제가 궁금한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행사를 기획하거든요. 저와 우만컴퍼니는 하나의 유기체 같아요. 우물에 깨끗한 물이 흘러야 사람들이 찾아와 갈증을 해소하는 것처럼 우만컴퍼니도 고이지 않고 계속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는 곳으로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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