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시골친구_윤태원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31816_1702359419.png
윤태원 with 에디터 선유

인디문학1호점 대표 | 나무 | 미니멀리즘

인스타그램 @1st.indimunhak


편안할 영(寧) 넘을 월(越),

번잡한 도시 생활에 지쳐 돌아온 그에게 영월은 이름 그대로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곳이었으며, 삶의 뿌리를 내리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서 여유롭고 고요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그는 하루하루 치열하게 움직이고 버텨낸다. 물 밑에서 세차게 발짓하는 우아한 백조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삶은 도시에서나 지역에서나 험난한 물살에 맞서고 버텨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이 안녕히 넘어가기를, 부디 내일이 무사히 넘어오기를 바라며.

31816_1702359436.png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윤태원이라고 합니다. 영월이 고향이고 이십 대 때 외지로 나갔다가 서른 즈음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은 산속에서 출판사와 독립책방을 운영합니다.

 

반갑습니다. 태원 님 자신을 ‘나무’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스무 살 이후로는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계속 지내왔어요. 서울에서는 자취방을 구해 살았는데 월세 집들이 그러하듯 집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집을 여러 번 옮겨야 했어요. 그리고 또 한 시절에는 배낭여행에 빠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좀 했거든요. 그렇게 지내다 점점 나이가 드니까 한곳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운 좋게도 지금은 조그만 공간을 하나 얻게 되었는데, 이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이곳에 정착해 오래오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무’라 했어요. 실제로 이 공간을 얻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마당 앞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기도 했고요.

31816_1702359581.jpg

성인이 되면서 영월을 떠나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어떻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애니메이션 회사의 스토리 작가로 잠깐 일했었어요. 일 때문에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됐는데, 제가 한창 뉴스에 나오던 ‘88만원 세대’거든요. 세금을 제하고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 딱 88만원이라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지내는데 조금 힘든 생활이 됐던거죠. 그러다 IT회사로 이직해서 기획자로 지내면서 조금 형편이 나아지긴 했지만 역시나 서울에는 친구도 없고 아는 곳도 없다 보니까 일상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서울살이가 힘에 부치기도 했고 많이 외롭기도 했어요. 그러다 이제 서른을 앞두고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어서 물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던가, 아니면 전부 정리하고 맘편하게 고향으로 내려가던가 둘 중 하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결국에는 이렇게 다시 영월로 오게 되었네요.


아무리 고향이라고 해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정착하려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고향에 내려온 이후로는 제가 서울에서 했던 그 어떤 경력도 살릴 수가 없더라고요. 애니메이션 스토리 작가라거나 기획자를 구하는 포지션 자체가 없다 보니까 처음에 내려와서는 아르바이트만 했어요. 리조트와 마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을 가는 생활을 반복했죠. 저는 ‘욜로’라는 말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이미 ‘욜로’를 하고 있었어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오고, 귀국해서도 알바하고 여행가고… 그러던 어느 날에 다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정말 갑자기 겁이 확 났어요.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건데, 평생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확 들면서 겁이 나길래 안되다 싶었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르바이트가 아닌 내 사업을 직접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죠. 그런데 막상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그나마 친숙한 책방을 떠올리게 된 거죠. 예전부터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걸 좋아했거든요.

 

처음부터 영월에 가서 책방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군요.

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가 마침 제가 독립출판 제작자로 활발히 활동하던 때이기도 하고, ‘독립출판’이라는 씬 자체가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막 세상에 알려지던 시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영월에도 독립서점을 하나 운영하면서 독립출판물도 함께 판매를 해보면 찾아주시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죠. 영월의 첫 큐레이션 서점이라는 것만으로도 희소성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31816_1702359632.JPG

사실 책방이라는 게 읍내에 있어도 사람이 많이 오는 매장은 아닌데 최근 산골로 이전하셨더라고요.

서점과 달리, 산속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어요. 영월 읍내에서 지낼 때도 저는 좀 번잡하고 소란하다고 느꼈거든요. 특히나 제가 냄새나 소음에 좀 예민한 편이라서 아파트처럼 공동주택에서 사는 일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진짜 아무도 없는 산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왔고요. 물론 생각만 하던 일인데, 저도 이렇게 일찍 산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산에 들어와 지내니까 정말 좋네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소매점 운영에 유리한 위치는 아니잖아요.

강원도에는 산속에 숨어있는 가게들이 종종 있어요. 카페나 북카페, 심지어 옆 동네에는 장어구이집도 산속에 있는데 정말 인기가 많아요. 물론 처음에 걱정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으로 들어오기 전에 읍내에서 4년 정도 서점을 운영했는데, 사실 찾아주시는 손님분들이 지역 주민들보다 영월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훨씬 더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읍내에 있거나 산속에 있거나 어차피 찾아오실 분들은 찾아오시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죠. 실제로 올해가 작년에 비해서 방문객 수는 줄었는데 매출은 늘어났더라고요. 어쩌면 오히려 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산속으로 이전하고 나서 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산속으로 들어와 정말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만족도가 높은 만큼 이걸 지켜야 한다는 압박? 무게감이 생겼어요. 이렇게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실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니까요. 자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이 불가한 이상 저 역시도 산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읍내가 싫어서 산으로 들어왔더니, 산에서 살기 위해 다시 읍내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 슬픈 일을 겪고 있는 중이에요.

31816_1702359665.JPG

제가 책방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인플루언서 분들과 영월 한달살기 에세이집을 만드셨어요. 청춘유리, 이슬아 작가 같은 분들과 신선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지역을 아카이브하고 홍보해서 반응이 뜨거웠죠.

천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해요. 서점을 시작한 뒤, 3개월만에 준비했던 돈이 다 떨어져서 정말 임대료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예요. 그래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중에 마침 서점을 자주 찾아주시던 단골 손님이 책으로 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 있으면 군청이랑 협업을 해보라며 권유를 하셨고, 그때 만든 기획이 한달살기 시리즈였어요. 저로서는 절박한 심정이었죠. 관공서와는 한 번도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기획서만 들고 무턱대고 찾아갔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관계자분들이 모두 좋게 봐주셨고, 기획안도 채택되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자체와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한방에 통과되었다니 놀라운데요.

이런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실제로 저는 지방의 경우, 단 3~4명의 공무원이 그 지역의 문화나 삶을 바꾼다고 믿어요. 그렇게 진행한 한달살기 시리즈 첫 번째 편 <그 여름, 젊은 달> 반응이 굉장히 좋다 보니 이후에 계절별로 하나씩 더 만들게 되었죠. 청춘유리 작가님처럼 유명한 여행 작가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협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지역 소식지 <살기좋은영월> 제작에도 참여하고 계신데요, 최근에는 편집부 북토크 행사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셨어요. 디제잉과 전시까지 신선하더라고요.

네, 한달살기 시리즈를 함께 만들었던 담당 주무관님이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군정 소식지 <살기좋은영월>을 맡게 되셨거든요. 이전에는 신문 형태로 발행되던 소식지를 올해 종합 매거진으로 개편하면서 저도 영월군 명예 기자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해서 영월에선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까지 준비하게 됐죠. 다른 지역들 사례를 많이 찾아봤는데 명예기자단의 기고까지는 많이들 하지만 저희처럼 주민들이 직접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기획 회의를 열고 컨셉을 논의하며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더라고요. 자부심을 느끼고 즐겁게 활동하고자 행사를 마련했어요.

31816_1702359705.JPG

영월이 지닌 매력이나 특별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 질문이 저로서는 답하기 제일 곤란한데요. 왜냐하면 저는 영월이 고향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매력이라고 할 만한 걸 잘 못 느껴서요. 그래도 하나 꼽자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한 곳’이 영월의 매력이 아닐까하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독립책방을 운영 할 수 있었던 것도 영월에 이런 책방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무엇보다 지원사업과 청년을 위한 정책들이 잘되어 있기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좋은 지역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시골 생활을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면, 시골에서는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유로움과 유유자적함이 시골 생활의 전부가 아니거든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환상만 보시고 부푼 희망과 꿈만으로 시골에 내려오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잘 살기 위해 들이는 힘과 노력은 도시나 시골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도시가 못 살겠어서 시골 생활을 꿈꾸는 것인지, 아니면 시골이 좋아서 시골 생활을 꿈꾸는 것인지 한번 고민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아요.

우당탕탕 시골 이야기!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 안녕, 시골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