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보리님_#3 호두가 익어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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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초보 시골생활자ㅣ티끌같은 돈을 모으는 N잡러小小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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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두가 익어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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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 언제 따여 - 이제 따야 해"

"네? 어떤 거요?"

"추자 말이야! 추자!"


아랫집 할머니가 올라오셔서는 추자를 따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처음엔 도대체 뭘 얘기하시는지 몰랐다. 할머니의 손끝이 가리키는 건 마당에 있는 호두나무였다. 그때 알았다. 이 동네에선 호두를 '추자'라고 부른다는 걸. 안 그래도 벌어지는 호두를 보며 언제 털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첫해에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부랴부랴 호두를 털었다. 그동안 사랑채 옆에 놓여있던 용도가 불분명한 긴 쇠 파이프가 호두를 터는 막대였다는 걸 깨달았고, 창고를 뒤졌더니 큰 천막 같은 게 나왔다. 나무 아래에 천막을 깔고 호두를 털었다. 나무가 커서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남편과 둘러앉아 장갑을 끼고 호두를 줍고, 아직 초록 껍데기가 덜 벗겨진 것들은 껍질을 까거나, 발로 밟아 터트렸다. 할머니 말씀이 물에 '바락바락' 씻어서 말려야 된다고 알려주셔서 호두를 열심히 씻어 햇빛에 널어두었다. 얼마나 말려야 되는지 몰라 마당에 일주일을 넘게 두었다가 하나씩 까서 먹어보고 적당히 말랐다 싶을 때 거둬서 창고에 넣어두었다.


바삭하고 쌉쌀하면서 고소한 맛. 그동안 먹던 수입산 호두 맛이 아니었다. 추억이 생각나는 고소한 맛이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손에 쥐고 굴리시던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은 호두 알이 생각났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꽃을 피우고 이렇게나 많은 열매를 맺은 게 신기하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집에 손님이 놀러 왔다 갈 때면 호두를 한 봉지씩 담아서 보내기도 했다. 고소한 호두를 나눠주는 게 참 좋았다. 그렇게 호두가 떨어져 갈 때쯤이면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이 온다.


이제 4번째 호두를 털어야 한다. 여름이 지나면 날을 잡아 호두나무를 털 참이다. 또 고소한 것들이 잔뜩 떨어지겠지. 이젠 제법 요령이 생겨 벌어지지 않은 호두는 그 채로 며칠 두면 수분이 날아가 껍질이 잘 까진다. 강제로 껍질을 까려고 하면 손은 손대로 검어지고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호두는 껍질이 붙어서 마르면서 검은색이 군데군데 물들어 지저분해진다. 시골에 와서 배운 건 모든 건 때가 있어서 급하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물론 때를 지나쳐도 안 되고 말이다.


호두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지금이 나에게 어떤 ‘때’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때에 내려와서 문경에서 보내는 시간도 조금씩 여물어 간다.

우당탕탕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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