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공주 수수네숲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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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네숲 with 에디터 원영

치유의 숲 ‘수수네숲’ 운영 | 공주 거주 3년 차

인스타 @susu_forest


가을에 접어든 ‘수수네숲’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소란스러운 소음과 고민으로부터 숨을 곳이 필요할 때,

이곳으로 달려오고 싶다고.


 60년 넘는 시간 동안 짙어진 초록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고, 

나의 발걸음을 오롯이 느끼며 숲길을 걷고,

출렁이던 마음의 파도는 어느새 잔잔해지고. 

고요가 밀려오는 그때, 나를 마주하는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여행자의 걸음이 어디로 향하든, 멋진 순간을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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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금세 긴장이 풀리는데요. ‘수수네숲’은 어떤 공간인가요.  

‘수수네숲’은 춤이나 걷기를 기반으로 동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치유의 숲이면서 땅두릅과 산나물 등 다양한 작물을 자연농법으로 재배하는 숲이에요. 주로 저희 부모님이 숲을 가꾸고 작물을 돌보는 일을, 제가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담당하는데요. 서로 일손을 채워주며 함께 ‘수수네숲’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저희 가족의 집이자 일터인 ‘수수네숲’은 부모님 이름에서 따왔어요. 두 분의 성함에 모두 ‘수’자가 들어가니 ‘수수네숲’이 좋겠다 싶었죠. 저는 부모님의 딸이라 자연스레 ‘수수’라 불리고요. ‘수수네숲’의 원래 이름은 무수산이에요. ‘없을 무’에 ‘근심 수’, 한마디로 근심이 없는 산에 치유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신기한 필연처럼 느껴져요. 


‘수수네숲’을 찾는 분들 중에는 치유나 명상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런 분들의 몸과 마음의 어색함을 어떻게 풀어내시나요. 

‘춤명상’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 결국, 몸을 움직이는 게 긴장과 어색함을 풀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깨달았죠. 다른 사람과 함께 걷고 가볍게 움직이다 보면, 춤을 한번도 춰본 적 없는 분들도 낯을 가리는 분들도 어느새 타인의 시선을 잊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시죠. ‘수수네숲’에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맨발로 진행해요. 맨발로 땅을 밟는 것을 ‘어씽(Earthing)’이라고 부르는데, 오감을 자극하고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는 어씽도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푸는 데 도움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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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가장 신경쓰거나 염두하는 지점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숲을 찾아오세요. 개인적으로 저를 알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협약한 기관에서 모집한 분들이 오시기도 하고요. 개인에 따라 경험의 종류와 폭이 다르고, 성향과 마음이 열리는 정도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해도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럼에도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낯선 체험들을 겪으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제가 가장 염두하는 부분이에요. 어떤 분은 단 한번의 체험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문득 변화를 알아차리는 분도 계시겠죠. 숲에 다녀가신 분들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 각자의 속도로 변화해나가시기를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오랫동안 사람이 찾지 않던 숲을 조금씩 가꾸어오셨다고 들었어요. ‘수수네숲’은 어쩌다 공주에 자리잡게 된 건가요.

부모님이 꽤 긴 시간 동안 터전이 될 만한 작은 숲을 찾으셨어요. 우리나라의 70%가 산이라는데, 아무리 뒤져도 인연 닿는 산이 없었죠. 우리가 살 만한 숲은 없는 건가 지쳐갈 즈음에야 아는 분 소개로 지금의 ‘수수네숲’이 있는 산을 만났어요. 그때부턴 마치 저희 가족이 여기에 오길 기다렸다는 듯 일이 술술 풀리더라고요.  

2015년에 부모님이 여기에 정착하신 뒤로, 일상 생활을 하고 산나물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조금씩 가꾸어오셨어요. 60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자연을 최대한 그대로 남기면서요. 나무들의 숨쉴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의 허가를 받아 솎아 베기를 하고, 부지런히 꽃을 심으셨죠. 농약이나 토양 살충제를 쓰지 않고 자연농법으로 산나물도 기르셨고요. 처음엔 해가 들지 않는 밀림이나 마찬가지였던 숲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아름다워졌어요. 


수수 님도 처음부터 부모님과 함께 공주에 오신 건가요. 

부모님이 산에 들어오실 땐, 제가 겨우 20대 중반이었어요. 이 숲이 부모님의 터전이라고 인식했지, 제가 살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저는 외국에 정착하고 싶었고, 제가 발 붙일 곳과 일을 찾아 여러 나라와 도시를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 그러다 제가 30대에 접어들었을 때엔 이미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계신 숲밖에 떠오르질 않았죠. 

그렇게 부모님이 계신 숲에서 자연치유를 통해 점차 건강을 회복했어요. 그 시간 동안 제 삶을 바꾼 소중한 인연을 만나고, 숲이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하면서 저처럼 몸과 마음이 지친 분들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숲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밖을 떠돌았던 제가 그제서야 ‘수수네숲’에 자리 잡기로 마음먹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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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님이 숲에서 지내는 동안 경험한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변화는 ‘나의 길이 분명해졌다’는 거예요. 저는 20대 내내 직장을 5~6개월마다 한 번씩 옮겼고, 때론 사업을 하거나 여러 일을 동시에 했어요. 제가 재능이 많아서라기 보다 다양한 일에 흥미가 있었고,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 쉽게 만족하지 못 했거든요. 돌아보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느꼈던 시간들이 마음 속 불안을 계속 키웠던 것 같아요. 점차 마음에 무리가 쌓였고, 더 이상 혼자서는 회복하기 힘들다고 느낀 시점에 숲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때 제 인생 최고의 스승이신 힐다 교수님을 만나게 됐죠. 

이후로 교수님이 곁에서 저의 치유를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치유사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셨어요. 저 스스로도 ‘내가 과연 사람들의 치유를 도울 수 있을까’ 의심할 때조차 힐다 교수님은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죠. 점점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과 저만의 내공이 쌓이면서 ‘이 일이 나의 천직이구나,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겠구나’ 확신이 생겼어요. 자연스레 인간 관계,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나다움’이 분명해졌고요. 숲과 힐다 교수님이 제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해준 셈이에요. 


그 시절의 수수 님처럼 저마다의 이유로 지친 이들이 ‘수수네숲’을 찾아올 텐데요. 때로 치유사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막막하거나 힘들지는 않나요.

이 일을 막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제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마치지 못 할까봐 걱정했어요. 또 다양한 분들의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소화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모든 인연과 순간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어려움은 자연히 사라지더라고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마치, ‘여행자’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해요. 우리가 만나는 순간 동안 어떤 편견 없이 순수하게 몰입하고 각자의 일상에서도 걱정이나 기대, 해석과 판단 없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거죠.

개인마다 경험의 폭도 숲을 찾아온 경로도 다르겠지만, 누구나 숲과 연결되길 바라고 내면에는 순수한 예술성이 있다고 믿어요. 서로의 예술성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숲에서 연결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여행자의 마음으로 만나는 오직 그 순간의 사람들에 몰입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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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가진 치유의 힘에 대해 얘기해주셨는데, 그 힘은 무엇일까요. 

이건 설명보다는 몸소 경험해보길 추천해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아직 한번도 맨발로 걸어본 적 없는 분이 계신다면, 지금 가장 가까운 흙길을 찾아 맨발로 걸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숲이 가진 힘을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숲을 맨발로 걷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맨발로 가만히 서서 눈을 감은 채, 땅과의 접촉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느껴보세요. 땅은 더 단단하게 우리의 두 발을 붙잡아줄 거예요. 맨발로 땅을 밟을 때에 지구와 연결감이 확장되고, 내면에서 모호했던 것들이 단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숲이 가진 힘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숲 자체가 거대한 치유의 원천이니까요. ‘어씽’을 꾸준히 반복하며 현존을 감각하다 보면 앞서 했던 저의 말이 와닿으실 거예요.


저는 공주에 처음 오지만,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은 야트막한 왕릉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수수 님이 살면서 만난 공주는 어떤 매력을 가진 지역인가요. 

제가 처음 공주에 왔을 때에 멋진 풍경을 가까이 두고도 마음이 힘들어 집에만 틀어 박혀 지냈어요. 어느 날, 불쑥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최대한 사람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천변을 골라 걸었는데요. 맞은 편에서 걸어오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뚜벅뚜벅 제 앞으로 오시더니, 저와 눈을 마주치며 “안녕하세요.” 따뜻하게 인사해주셨어요. 일면식도 없고 한참 어린 저에게 할아버지가 건넨 인사가 제 마음을 편안하게 했어요. 그때 기억이 지금까지도 공주에 대한 따뜻한 인상으로 남아 있죠. 

공주는 느리고 고요한 도시예요. 유유히 흐르는 제민천과 나즈막한 언덕, 둘러싼 숲들이 온화한 정취를 만들어내죠. 그래서인지, 제가 공주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따뜻했어요. 공주의 포근함을 저만 느낀 건 아닌 것 같아요. ‘수수네숲’에 들렀다가 공주의 매력에 푹 빠진 분들이 많거든요.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지친 마음을 충전하고 싶은 분,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싶은 분들에게 공주는 적당한 속도를 가진 장소예요. 공주에 오셔서 ‘수수네숲’에서 나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실 수도 있고요.


앞으로 ‘수수네숲’이 시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숲에서 수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이제는 ‘수수네숲’이 제 존재 자체라고 느껴요. 숲의 목소리가 제가 바라는 꿈인 셈이죠. 바라는 건 딱 한 가지, ‘수수네숲’이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해요. 지금은 공주 무수산이 ‘수수네숲’으로 불리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곳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숲이 너무 좋고 여기에서 천년만년 살고 싶지만, 그렇다고 장소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요. 한쪽으로 기운 마음은 삶의 어느 부분에 불균형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숲과 인연이 다하면 어디든 거점을 옮길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제가 그리고 ‘수수네숲’이라는 울타리가 품은 치유 에너지예요. 많은 것들이 빨리 생겼다 사라지고,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저도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나를 돌볼 곳이 필요한 분들에게 안식처가 되긴 어려울 거예요. 바쁘게 살다가도 가끔은 잠시 멈춰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이 언제나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수수네숲’이 되고 싶어요, 숲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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