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정종순 님_#2 초인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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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순

전직 시의원ㅣ현직 충청인사이트 대표ㅣ시골N잡러

인스타 @egosword / @sigol.79

#2 초인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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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삿짐을 부린 첫날. 초겨울인 데다 산 밑이라 그런지 금방 어두워졌다. 짐만 겨우 부려놓아 발 디딜 틈이 없는 거실에서 당장 갈아입을 옷을 찾아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종순이 오늘 이사 왔다며?" 한 동네에 사는 아버지의 사촌이자 아저씨 뻘인 당숙 어른이 허허 웃으며 들어오셨다.

 

나는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엄마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릴 때조차 친구를 집에 들이는 게 손에 꼽았다. 독립하면서 혼자 적막하게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았던 나에게 초대하지 않은 누군가가 내 공간에 아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건 스릴러 영화에나 나올 일이었다. 다행히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이 재빠르게 일어서며 어서 들어오시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순식간에 내 비명 소리에 당혹스러웠던 공기가 다시 풀어졌다. 그날 밤 나는 친척 어른들이 또 방문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그 방문 전에 절대 전화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반복해서 상기시켰다. 그렇게 여러 번 머릿속에서 상상하다 보면 현실에서도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머릿속은 정리가 안됐고 우선은 커피부터 사야겠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후로 나를 단련시켜 준 사람은 엄마였다. 심지어 엄마는 방문하는 시간도 매일 달랐다. 어느 이른 아침, 레깅스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홈트레이닝을 하던 나를 흘깃 본 엄마는 아랑곳없이 주방 서랍들을 열어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쏟아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도대체 운동을 얼마나 일찍 시작해야 할까 생각했다. 층간 소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과 상관없이 집에 혼자 있어도 노출이 심한 운동복을 입거나 땀을 흘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평상복도 몇 개 사야 한다. 잠옷 같지는 않고 품은 넉넉한 것으로.

 

울타리를 치는 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 심리적인 거리감을 만들기 위해서 대문만이라도 세우라는 도시 친구들의 조언도 솔깃했지만 역시 관뒀다. 너무 속 보여서 얌체로 찍힐 거 같다는 걱정도 됐다. 여전히 우리 집에는 담장도 대문도 초인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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