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친구_김해 김서운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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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운 with 에디터 무해

바느질공방 '니들누들' 대표 | 협동조합 '재미난 사람들' 대표

인스타그램 @jamti_


정말 살기 좋다며 김해에 대한 자랑을 잔뜩 하는 것도 모자라, 김해에 꼭 한번 놀러오라는 말을 건넨다. 반짝거리는 그의 눈을 보니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김해에 대한 그의 애정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김해를 찾았다. 인구 53만의 도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 왕릉을 주변으로 고즈넉한 담장길이 이어지고, 시내를 통과하는 경전철은 대도시 부산까지 가닿는다. 도시적인 인프라, 유구한 역사 문화유산, 여유로운 오솔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김해에 오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었던 매력이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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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가끔 저보고 사람들이 호호 아줌마 같다고 하는데요, 고양이랑 마당이 있는 곳에서 바느질하면서 재밌게 살고자 하죠.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고 계신데 바느질은 원래 취미였나요.

네 맞아요. 부산에 있을 때 나무 공방을 먼저 다녔는데 재밌었지만, 기구들이 너무 크고 무겁고 무서웠어요. 우연히 바느질을 접하고 이걸 취미로 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됐어요.

 

부산에서는 직장인이셨다고요.

20년 동안 진짜 열심히 일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그때는 저금도 하고 재테크도 하고 열심이었죠. 서울로 가려고도 했고요. 학교를 졸업하면 친구들이 서울로 취업을 했거든요. 그때는 서울로 가야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로가 있으셨군요.

사실 저도 가려고 했는데 잘 풀리지 않았어요. 한 친구는 수십 개의 이력서를 써서 자기가 원하는 회사가 있는 서울로 갔거든요. 목표가 뚜렷한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서울로 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20대 때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전부고 그걸 평생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30~40대를 지나다 보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고,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느 길을 가는지 결국 자기 선택이지만 살면 살수록 참 재밌는 일들이 많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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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재미난 사람들도 그런 재미난 일들 속에 만들어진 건가요.

일 저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김해로 온 뒤 어떤 공간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당시 악기를 다루면 좋겠다 싶어 클래식 기타를 알아봤는데, 친구가 문화의 전당 뒷골목에 기타를 가르쳐주는 카페가 있다고, 딱 네 스타일이니까 한번 가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갔더니 제 또래 친구들이 너무 재밌게 노는 거예요. 나이 든 어른들이 어릴 때 놀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날부터 매일 거기 가서 살았어요.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그곳에서 위로를 무척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저처럼 손님으로 와서 친해진 사람들이 모여서 자연스레 재미난 일을 도모하는, 재미난 사람들이라는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거예요.


재미난 사람들이 김해 봉황대길(봉리단길)을 만든 주역이었다고요.

제가 바로 옆 동네 살다가 봉황동으로 이사 갔는데요. 봉황동은 낙후된 원도심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사 와서도 앞쪽 큰 도로로만 다녔어요. 뒷길로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죠. 우연한 기회에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뒷골목에 재미있고 신기한 곳들이 많은 거예요. 원래 살던 곳은 아파트랑 건물이 세워진 구획 도로였거든요. 봉황동은 원도심이다 보니까 도리어 훼손이 안 된, 있는 그대로의 골목길이 많았어요. 여기서 우리가 무언갈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부동산에 가 봤는데 '여기는 식당이고 뭐고 사람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우리가 해볼게요, 건물 좀 팔아주세요."라고 해서 집주인을 겨우 설득해 임대로 내놓은 건물을 2016년도에 매입했어요. 조합원 7명이 6개월 정도 함께 공사를 했죠.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곳, 회현종합상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재미난 사람들의 거점이기도 한데요, 이름이 왜 회현종합상사인가요.

회현동(봉황동의 행정구역상 이름)의 '회현'과 경제부흥의 상징인 '종합상사'를 빌어와 '회현종합상사'라고 지었어요. 우리가 이 건물에 여러 가게를 입주시키기도 했고요. 우리 외에 주축이 되는 멤버로 1935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 사장님도 이 동네에서 카페를 하면서 문화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오셨대요. 오다가다 마주치며 이야기하다 저희랑 오픈 일자를 맞췄어요. 2017년 오픈한 그때, 봉황동에 가게가 딱 2개 있었어요. 점차 상인들이 들어오고 봉리단길이라고 알려지면서 4년 뒤에 이 조그만 동네 안에 가게가 100개가 넘더라고요. 


유동 인구가 없는데 어떻게 처음에 가게를 시작하신 건가요.

약간 좀 대책이 없었어요. 한 마디로 돈 벌 생각은 아니었죠. 수익적으로 뭘 해보겠다는 목적보다 우리가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마인드였어요. 보통 조합은 동종 업종이 모여서 하거든요. 예를 들어 치킨집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닭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 시설을 함께 구입하는 등의 일을 조합에서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카페, 사진관, 바느질 공방 등 전부 다른 업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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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異) 업종이 모인 재미난 사람들은 함께 어떤 일들을 벌였나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어요. 3년 동안 음악, 퍼포먼스, 강연 등 170여 회 공연을 올렸고요. 그나마 최근에 한 건 동네 사람들을 모아 "나도 드레서"라는 행사를 진행했어요. 사람들 모아서 할머니들 드레스 만드는 옷 만드는 수업이었는데요. 옷을 만들어서 할머니들한테 입히고 근처 미용실 가서 머리도 하고, 사진관 가서 사진도 찍었어요. 마지막 백미로 회현종합상사 마당에서 음식 대접하면서 오페라 공연을 보여드렸어요. 그때 인상적인 게 할머니들이 오페라를 이해하시겠나 싶은데 다 아시는 거예요. 기회가 없었다 뿐이지 어르신들도 좋은 걸 다 아셨던 거죠. 행사 끝나고 옷을 김해 다문화 센터에 기증하려는데 할머니들이 ‘이거 나한테 줄 수 없냐’, ‘내가 사면 안 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가져가시라고 드리는데 돈 5만 원을 주시는 거예요. 우리 이거 지원받아서 하는 행사라 안 받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할머니들이 그렇게 정겹더라고요.


역시 지역에는 사람 사는 정이 많이 남아 있네요.

회현종합상사 바로 옆이 경로당이거든요. 우리 건물과 딱 붙어 있어요. 공사할 때 할머니들이 맨날 뭐 먹으라고 던져주시고, 옆집 사람이 여행을 가면 서로 개나 고양이 똥 치워주고 놀아주거나 산책시켜 줘요. 아무래도 여기는 구도심이니까 사람 사는 맛이 있어요. 우리가 말하는 옛 동네의 정서가 많이 남아 있죠. 저는 작업실에서 가끔 밤샐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별로 무섭지 않아요. 도둑놈이 마음먹고 들어오면 어디든 못 들어오겠나 싶지만 또 다른 안전, 사람과의 안전을 택하면 더 좋은 효과가 있더라고요. 

 

현재 회현종합상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나요.

최근에는 건물 안에 서점을 들였어요. 우리 동네에 서점이 없는 거예요. 독립서점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세를 싸게 해서 공고를 냈어요. 독립서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면접까지 봤어요. 예전부터 봐왔던 지역의 작가 청년인데 서점을 하려고 한 걸 알고 있었거든요. 좀 있으면 오픈 시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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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걸어서 30분 안에 모든 게 다 있어요. 병원부터 시작해 도서관, 박물관, 백화점, 문화의 전당, 무엇보다 곳곳이 유적공원인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개인적으론 차도보다 넓은 김해의 인도가 가장 매력적이에요. 아파트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 곳은 사실 갈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잖아요. 근데 아까도 보셨지만 정말 오는 길이 오래된 공원이에요. 길들이 사이사이 많죠. 어느 골목을 들어갔는데 조개 무덤이 있는 거예요. 걷다가 우연히 그런 걸 발견하니까 걸으면서 매력을 많이 느껴요. 또 자랑스러운 노무현 생가도 김해에 있고요.

 

지역에 사는 아쉬운 점도 있나요.

지역에서도 충분히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예전에 어떤 감독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갔는데 우리나라 1세대 영화감독의 회고전을 하더래요. 자신은 영화감독이니까 관심이 많아서 아는데 어떻게 프랑스 시골에서 자국도 관심이 없는 1세대 영화감독을 알고 있을까, 시골이니까 사람도 없는데 그런 곳에서 회고전을 진행하는 힘이 자기는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대요. 저도 동감이고요.


프랑스 지역의 힘이 어마어마하네요.

시골에서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가 있어야지 좀 더 좋은 나라가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워낙 자극적인 게 많잖아요. 시골의 자연에서 얻는 좋은 자극이 정말 많은데 이런 자극을 녹인 문화적인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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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상인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상가들이 많아졌어요. 그중 장사만 하는 상인도 있을 거고, 아니면 내가 이 동네를 위해 같이 뭔가를 해보고 싶은 상인들도 있고 다양하잖아요. 여기는 작은 가게들이 많은데요, 사람들이 밥을 먹거나 음료만 마시고 가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몇몇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아까 말한 책방만 하더라도 작은 책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적고 프린트해서요. 또 여기 앞, 로스팅 샵에서는 핸드드립을 배울 수 있고, 가죽 공방에서도 열쇠고리를 만들거나, 저도 안 입는 옷이나 안 쓰는 천으로 파우치를 만들 수 있고요. 김해에 와서 즐기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지역이 좀 더 활발해지겠어요.

개인적으로 지역 신문을 만들어 방금 말한 체험을 거기에 홍보할 생각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SNS가 익숙하지만 제 또래들은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어서 도움이 될까 하고요. 종이 한 장으로 만들어서 펼치면 지도가 보이게끔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동네 구석구석 골목골목 이야기도 담고요. 감사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동네 종이 가게에서 인쇄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발행하고 나중에 책으로 묶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하시는 일들이 소박한데 흥미진진해요. 사는 재미가 있어 보인달까.

어릴 적 시골에 살았는데 그때는 계절의 변화조차 잘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당에 피는 꽃과 풀 한 포기, 눅눅한 아침 공기, 매일 떠오르는 달, 마당의 고양이들, 가까운 친구까지 다 반짝반짝 빛나 보여요. 주변에서 에너지를 얻어 자꾸 꼼지락거리게 되는 거 같아요. 우리 모두 주변을 둘러보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그러면 내가 있는 공간을 더 사랑하게 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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