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정종순 님_#4 닭이 풀을 먹다니





+시골을 호시탐탐 엿보고, 탐험하는 사람들 여기여기 모여라! 시골과 연결된 나만의 다양한 이야기를 안녕시골이 대신 시리즈로 전해드립니다🙌 ※연재 신청 언제나 환영 환영!※
31816_1696900224.png
@정종순

전직 시의원ㅣ현직 충청인사이트 대표ㅣ시골N잡러

인스타 @egosword / @sigol.79

브런치 https://brunch.co.kr/@egosword

#4 닭이 풀을 먹다니?

31816_1698727328.png

다들 봄에 풀 한 번 뽑아 보고 나면 도망갈 거라고 했다. 동네 어른들은 이렇게 젊은 사람이(계속 이야기하지만 마흔이 넘었다) 살 수 있겠냐고 걱정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해맑게 웃었다. 뭘 몰랐으니까.

 

며칠씩 고립되던 긴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첫겨울을 눈 속에서 보내서 그런지 봄이 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매일 아침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보니 골목골목 싹이 움트는 게 보이고 가는 줄기만으로 버틴 나무에 잎이 돋는 게 신기했다.

 

드디어 마당에 푸른 기가 돌기 시작하자 나는 이제 봄이구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렀던 어머니의 한숨과 함께 잔소리가 시작됐다. 내가 본 파란 것들은 잔디가 살아나는 게 아니라 잡초였다. 생명력도 강한 잡초가 잔디는 아직 누렇게 말라 있는 동안 벌써 열심히 뿌리를 뻗고 있었다.


잔디와 부추도 구별이 안 되는 정도라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을 구별해 낼 안목 따위는 없었다. 손에 익지도 않아서 정말 느리게 느리게 풀을 뽑았고 안 쓰던 손마디가 아파져 왔다. 풀 뽑기는 딱 1주일이 지나니까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엄마가 등장했다. “그 풀 그냥 버리지 말고 닭을 줘.” 사람이 이렇게 편견과 선입견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나는 닭이 원래 사료만 먹는 줄 알았다. 생각해 보니 잡식성 동물이고 사료가 만들어진 역사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내가 본 단편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있었다. 나의 이 놀라운 발견에 엄마는 한 마디를 덧붙이며 다시 한숨을 쉬셨다. “아주 조금 있으면 쌀나무도 찾겠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닭장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풀이 가득 든 수레를 부었다. 풀이 우수수 떨어지자마자 닭들이 너도나도 날개를 활짝 펴고 달려들어서 나는 기겁을 하며 줄행랑을 놓았다. 그리곤 멀찍이서 닭이 신나게 발로 풀을 헤치고 부리로 쪼는 것을 지켜보았다. 유레카! 나는 닭이 풀을 먹는다는 엄청난 진리를 세상에서 처음 발견해 낸 사람처럼 가슴 가득 뿌듯함을 느꼈다.


만약 닭을 키우지 않았다면 나는 풀을 뽑는 것을 고행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닭이 말 그대로 활개를 치며 풀을 뒤적거리던 것을 본 후로 내 마당의 잡초는 귀한 것이 됐다.

우당탕탕 시골 이야기!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 안녕, 시골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