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귤껍질 님_#1 두 번의 건축, 그 사이 10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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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

오도이촌ㅣ브런치 '엄마의 집짓기' 작가ㅣ앱 서비스 기획자

인스타 @essay_hee

#1 두 번의 건축, 그 사이 10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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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은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

 

천안에는 지금 지어지고 있는 집을 포함해 두 채의 집이 있다. 구축이라고 부르는 현재 부모님이 생활하고 있는 집은 1층 열 평, 2층 다섯 평의 주말농장에 걸맞은 동화 같은 집이다. 갈색 벽돌에 노란색으로 페인트칠 된 내부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지만 머리와 마음속 귀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던 아빠에게, 지인이 소개해 준 광덕산의 땅은 최적의 장소였다. 주변에 온 맘으로 아끼는 막냇동생까지 살고 있으니, 천안이라는 지역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300평 정도 부지의, 경치가 제일 잘 보이는 가장 앞쪽 땅을 구매한 아빠는 마음의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서울살이에서 오는 피로를 풀어낼 곳이 필요했던 아빠에게 단비 같은 공간이었다.

 

여기에 별장까지 짓게 된 이유에는 현실과 욕망 두 가지가 맞닿아 있다. 현실적으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땅을 적절히 활용해야 했고, 시골 생활의 낭만을 가지고 있던 아빠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땅을 구입하고 얼마 뒤 아빠 친구의 형부라는 건축가분의 집에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 집과, 연결된 어린이집이 그분이 아내를 위해 지은 건축물이었다. 직접 가서 보니 디자인적 감각이 부모님 마음에 쏙 들어서 그분께 주말농장에서 쉼터가 될 작은 별장 건축을 부탁하기로 했다.

 

구축이 지어졌던 과정은 신축과는 사뭇 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길 필요 없이 종합건설사의 건축사 아저씨와만 커뮤니케이션하며 진행 상황을 체크하면 되었다.

 

엄마는 신축은 직영 방식, 구축은 턴키 방식이라고 했다. 직영은 말 그대로 주인이 직접 모든 단계를 수행하는 것이고, 턴키는 종합건설사에서 집을 다 지어주고 주인은 최종적으로 키만 수령하는 걸 말한다. 턴키라니, 건축에는 은근히 재밌는 용어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였다.

 

직영 방식은 종합건설사 비용이 들지 않아 비교적 저렴하고, 턴키는 완성된 집에 입주만 하면 되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방식을 다 경험해 본 엄마는 막상 집을 직접 짓다 보면 욕심이 생겨서 더 좋은 벽돌 쓰고 좀 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찾다 보면 오히려 더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결국 비용은 비슷하고, 내가 해보고 싶은 걸 선택하면 되는 거야. 나는 <건축 탐구 집>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내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그래서 신축은 직영 방식을 선택했지”라는 엄마의 말에서 그동안 매번 집을 짓다 보니 돈 생각을 못 하고 눈만 높아져 힘들다며 하소연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구축이 지어지는 틈틈이 천안에 내려왔었는데 당시에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아직 인테리어가 덜 된 집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우리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게 하려고 천안 갈 때 웬만하면 함께 가려고 했었다. 그 덕분에 천안 호두마을의 사계절을 경험하며 점점 애정이 생겼던 것 같다.

 

우리 집이 1등으로, 그다음에는 뒷집이, 그다음으로는 옆집 뚝딱이 아저씨네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생기니 할 일 없던 시골 생활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서로 그림과 한자를 가르쳐 주고, 날이 선선하면 테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옛날 선비들처럼 유유자적하는 생활에 푹 빠져버렸다.

 

아빠 같은 성향의 사람만 시골살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나도 좋았다. 특히 가을에 내려가면 아빠가 잠자리채 같은 걸 개조한 긴 막대로 감을 따주는 건 진짜 재밌는 콘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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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머루랑 다래랑 먹자는 노랫말 속 다래도 처음 먹어보았고, 닭이 갓 나은 달걀에 구멍을 뚫어서 먹는 방법, 제멋대로 자란 과일들이 내는 어딘가 일 퍼센트 모자라지만 색다른 맛도 천안집이 없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첫 집은 그렇게 우리 가족을 광덕산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집을 중심으로 부모님에게는 제2의 삶을, 나에게는 시골 생활의 매력을 담뿍 느끼게 해 준 시간이 있었다.

 

구축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는 10년가량의 시간 동안 천안도 우리 가족들도 많이 변했다. 부모님은 30년 정도 근속한 회사에서 퇴직하고, 나와 동생은 직장인과 대학교 졸업 학년이 되었다. 이 시간 동안 천안집은 서울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들로 삶의 밀도를 올려주었다. 모쪼록 새롭게 짓고 있는 집에서도 다채로운 경험들로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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