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귤껍질 님_#2 토대를 닦는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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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

오도이촌ㅣ브런치 '엄마의 집짓기' 작가ㅣ앱 서비스 기획자

인스타 @essay_hee

#2 토대를 닦는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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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밑에 정보가 다 들어있는 거야.“

 

천안에서 보내온 사진 한 장을 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구나 했다.

사진 못 찍는다고 구박받던 아빠였는데, 집 터 위에 누워있는 엄마와 그 옆 껌딱지인 호를 담아낸 사진은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뭔가를 시작하는 설렘을 너무 잘 담아내고 있었다.

동시에 부모님이 가꾸던 정원 동산과 농장이 있던 곳이 평평한 콘크리트 토대로 변한 것을 보고, 많은 추억들을 담고 있는 푸릇푸릇했던 마당이 사라져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집을 지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나무 사이 매어둔 그물 그네를 타던 동산이 없어진 것이 조금 슬펐다. 가을에는 오디와 미니 수박, 가지 등을 따먹던 주말농장이 온데간데없고, 작은 공사장처럼 변한 집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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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의 시작을 알린 건 주황색 트랙터였다. 트랙터 몇 대가 와서 큰 돌들을 골라내고, 흙을 가득 실은 트럭이 뒤따라와 그 자리를 메꿨다. 경사가 있던 땅을 깎고 잔디로 푸릇하게 덮였던 땅이 온통 갈색이 될 때까지 갈아엎고 나서야 땅을 다지는 작업이 끝났다.

 

엄마는 집을 짓는 과정을 신체에 비유했다. "사람으로 치면 정보가 머리에 있잖아. 근데 건물은 정보가 바닥에 있어. 뇌가 바닥에 있는 셈이지. 기초는 그 자체로 완성품이 안되지만 위로 설계되는 건물의 단초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해."라며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설명해 줬다. 그 위에 올리는 골조는 척추뼈 같은 것이고, 다시 그 위를 휘감는 전선이나 수도는 혈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는 오수관과 우수관, 전기 설비 등 설계의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장비들이 바닥과 땅 아래에 숨겨진다. 그 위에 단열재를 놓고, 바닥을 얼기설기 철근으로 엮는다. 마지막으로 콘크리트를 덮으면 작업이 완료된다.

 

"공그리 작업은 꼭 튼튼한 콘크리트로 해주세요."라고 하니, 아저씨들이 공그리가 콘크리트를 말하는 거라며 웃었다고, 엄마는 그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던지 몇 번이고 말해줬다.

 

그렇게 콘크리트를 덮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뭔가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바닥을 다 뜯어내야 하는 대공사가 필요하다며, “H빔 철근 골조가 잘못되는 게 그나마 낫지, 바닥은 기초라서 잘못되면 진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거야. “ 했다.

 

토대를 닦으면서 뭐가 가장 힘들었는지 물으니, 역시 금액이었다.

 

“비용 때문에 애먹었어. 너희 아빠가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 “라며 토대를 닦기 위해 천안 지역에서 새로 구한 건축사무소와 일하는 과정에 특히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뭐만 하면 비용 추가를 외치고, 다른 곳에 의뢰하거나 직접 하겠다고 해도 재빠르게 작업할 자제들을 가져와서 일을 맡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례로 U자형 플륨관이라는 물이 흘러 나가기 위해 땅 아래에 묻는 관이 있는데, 그 위를 철판으로 판판하게 덮는 작업은 공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부모님이 직접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다음날 자제를 다 가져와버려서 강제로 일을 맡기게 되었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상황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니 괘씸하기도 하고 고용한 분들의 보험 가입 비용, 건축 허가를 위한 비용 등 가뜩이나 예상치 못한 비용이 많이 들어 힘들어했던 아빠를 더 괴롭게 했다.

 

그럼 좋았던 에피소드는 없었냐고 물으니 바로 ”집 위치가 1m 정도 뒤로 간 거 알아? “한다.

 

건축사무소에서 집 위치를 설계도와 달리 1m 뒤로 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실수가 더 좋은 창조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듯이 엄마는 1m 뒤로 이동했더니 앞마당 활용도도 높아지고, 무엇보다 구축과 예쁜 포물선을 이루며 마당을 안아주는 지금의 구조가 되었다고 했다.

 

“결국 실수가 마당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해 줬을 뿐 아니라, 우리 집을 더 아늑하고 예쁜 곳으로 만들어준 셈이야.“라며 좋아하는 걸 보니, 부모님을 고생시킨 건축사라 미웠지만 그래도 고마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에 공사판이 된 천안 집을 처음 봤을 때 든 느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었다. 이제 집이 완성될 때까지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부모님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토대가 완성되었을 때, 큰 프로젝트를 무사히 시작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꿈을 향한 여정의 첫발이라는 뿌듯함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이 사진에서도 잘 느껴졌다.

 

“토대를 닦는다는 건, 그 자체로 완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보이는 인테리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중요한 거였어. 나는 건축을 모르니까 인테리어만 생각해 봤었는데 막상 건축을 시작하니 기초가 엉망이면 그 집은 절대 완성이 못 되는 거더라고. “라며, 엄마는 소감을 말해줬다.

 

지금은 건축 자재들과 흙으로 뒤덮인 마당이지만, 앞으로 타샤의 정원처럼 자유롭게 각양각색의 빛을 내는 식물들이 가득한 정원을 꿈꾸고 있다. "이 집은 정원과 광덕산 풍경이 메인이야."라며 집이 완성되고 나면 틀림없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멋진 정원을 가꾸겠다는 엄마의 말처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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