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귤껍질 님_#3 아빠의 잔잔하지만, 단단한 능력





@귤껍질

오도이촌ㅣ브런치 '엄마의 집짓기' 작가ㅣ앱 서비스 기획자

인스타 @essay_hee

#3 아빠의 잔잔하지만, 단단한 능력

“나 그 이야기는 누가 시골에서 집 짓겠다 하면 꼭 해줄 거야. 너희 아빠가 11년 동안 관계를 쌓아온 이야기.”


여느 때처럼 서울로 올라온 엄마에게 천안집 관련 이야기를 해달라 하니, 갑자기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엄마의 꿈을 더 적극적으로 응원해 줬으면 좋겠고, 예술적 감각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불평들은 자주 들어서 맥락을 꿰고 있는데, 칭찬이라니 귀가 쫑긋했다.


“우리 집 지으면서 잡음이 진짜 없었어. 민원 하나 없이 마무리된 건 너희 아빠가 11년 동안 쌓아온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 덕분이야.”라며 보이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들 마음을 얻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빠는 이타적이고 유한 성격이지.”라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아빠는 모르는 분이어도 동네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보는 성격이고,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떨어진 지루한 긴 이야기도 끝까지 잘 들어준다. 천안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좋아해서 이 집 저 집 막걸리를 마시러 다니고 동네의 희망단이라는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봉사하는 마을 자치 단체 활동도 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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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이나 경비 아저씨가 따로 없는 시골 동네에서, 동네로 오는 길 옆에 난 풀을 정리하는 제초 작업이나 겨울에는 길이 얼지 않게 눈을 쓰는 일은 주민들의 몫이다. 옆집 뚝딱이 아저씨가 특히 열심이고, 아빠도 꼭꼭 참여하여 도맡아 하는데 최근에는 마을 호두 따기 행사에도 참여해서 받은 호두를 명절에 사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맨날 일하려고 보면 사람들 만나러 가버리니 엄마는 불만이지만, 두루두루 친한 건 장점이지”라며 엄마는 오랜만에 아빠를 치켜세워줬다.


이런 아빠의 친화력이 예상치 못하게 건축을 하며 빛을 발한 거다. 2층 집이다 보니, 8m 길이의 H빔이 골조로 들어갔다. 외삼촌이 그 큰 H빔 골조를 좁은 산길을 따라서 들여오는데, 보면서도 이게 되는구나 싶어 신기했다고 한다. 엄마는 “건축하러 오는 팀마다 이걸 어떻게 들여왔냐고 하더라고. 덕분에 그 뒤에 오는 건축 팀들은 산골이어서 자재를 못 들고 온다는 말을 못 했지.”라며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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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니 부모님에게는 신기한 일이지만, 동네 주민들에게는 교통에도 방해가 되고, 조용한 동네에 흔치 않은 낯설고 경계심이 드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오가는 사람들이 무슨 건물 올리냐고 물어봤다고 하니, 산골 마을에서 얼마나 생경한 장면이었을지 예상이 되었다.


H빔은 그래도 한나절 에피소드였다면, 벽돌 쌓기는 23일 동안 지속된 지루한 과정이었다. 돌가루와 시멘트를 굳혀서 만든 벽돌이라서 다른 벽돌보다 가루가 엄청 날렸다. 간이벽을 쳐도 가루와 소리는 바람을 따라 동네에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을 이장님도 나서서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해 주시고, 가장 피해가 많았을 옆집은 “저 집 공사 언제 끝나요?”하면 “곧 끝납니다.”하며 잘 넘겨주었다고 한다.


“조용한 시골에서 집을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나이 많으신 분들도 많고, 텃세도 있을 수밖에 없고. 물론 우리도 조심해 가며 했지만, 옆집은 말할 것도 없고 다들 도와주고 공감해 줘서 문제가 없었던 거야”라며 엄마는 시골집 짓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동네 주민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고 꼭 이야기해 줄 거라고 했다.


이전 글들을 본 아빠 친구분이 엄마가 열심히 할 동안 뭐 했냐며 장난스럽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의 추진력 뒤에 든든하게 지지하고 있었던 아빠의 이야기도 남기고 싶어서 글을 쓴다.


아빠의 집 짓기도 파이팅이다!

우당탕탕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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