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의 시골친구_상글&꼬리 님





+시골의 가치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시골 생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안녕시골은 그걸 '시골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시골친구를 직접 만나 나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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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글&꼬리 with 에디터 무해

지리산방랑단 | 구례 귀촌 청년 | 성 다양성 축제

인스타그램 @jirisan_nomad


지리산 자락에 정착하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이들. 자연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웠고, 그 감각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의 관계를 재편했다. 인간으로서의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지리산의 선배 동물로부터 자연과 동거하는 삶을 배우는 일상.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다 보니 내 마음이 덩달아 푸근해지고 편안해진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방식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존재들에게서 나는 오늘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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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랑단, 이름이 재밌어요. 어떻게 시작한 단체인가요.

 저희가 처음 만난 건 2020년 남원 산내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하는 청년 인생 학교에 들어가면서였어요. 8명의 신입생이 있었는데 그중 4명이 저희였던 거죠. 1년의 과정이 끝나고 저는 마땅한 거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갔고, 나머지 친구들은 남아서 4개월 동안 지리산 무전 방랑을 했는데 그게 방랑단의 시작이 됐어요.

 

지리산방랑단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저희는 보통 누군가 어떤 문제를 고민하거나 힘들어하면 그걸 프로젝트로 풀어보는 걸 좋아해요. 각자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듣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볼까?’ 하거든요.

올해는 지리산 권역에 사는 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이유로 정착하고 떠나는지 알기 위해 지리산 권역을 다니며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했어요. 자체적으론 서울의 환경활동가와 펜팔을 주고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지역에서 일어나는 개발 이슈에 대한 중요성이나 목소리가 너무 작게 느껴지니까 외로웠거든요. 지리산의 이야기도 나누고 동료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기획했죠. 최근에는 구례 계족산에 섬진강 물을 취수해서 양수댐을 만드는 사업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해서, 주민들이랑 양수사업을 막기 위한 1인 시위를 함께 계획해 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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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환경에 관한 활동이 주를 이루네요.

자연 보호나 기후 변화 대응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그런 입장에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지리산에서 살아가니 자연스레 이곳을 더 알아가고 싶고, 또 오래 깃들어 지내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었죠. 흔히 자연을 자본이나 인간 중심의 시선으로 많이 보잖아요. 예를 들면 힐링이나 관광, 우리가 기대어 사는 대상으로요. 그런데 새나 다람쥐 같은 야생 동물은 사실 그렇게 보지 않거든요. 이제 지리산이 저희에게도 삶의 터전이 됐으니 야생 동물처럼 지리산을 느끼고, 또 그들이 거름으로 돌려주는 것처럼 저희도 지리산에 뭔가를 돌려주고 싶었어요.


지리산에서 사는 삶은 어떤가요.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껴요. 특히 계절의 변화나 지리산에 살면서 느끼는 것들요. 예를 들면 겨울엔 참새가 포동포동해져요. 고양이나 개가 털 찌우듯 참새도 겨울에 살이 찌는 거예요. 그러다 점점 날이 풀리면서 참새가 다시 훌쭉해져요. 가끔가다, 산책할 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다는 게 감격스러울 때가 있어요. 펜팔 프로젝트할 때 '아름다운 거는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썼던 기억이 나요.

저는 섬진강 앞에 살았거든요. 강 가까운 쪽에 살았는데 철새를 겨울 내내 많이 봤어요. 눈 덮인 하얀 강에서 철새들이 목욕하고 수달들도 같이 무리 지어서 노는 모습을 보다가 따뜻한 봄이 오니까 씨앗을 이제 틔우는 시기가 되는 거예요. 농사를 오래 계속해왔지만 그래도 아직 초보이다 보니까 하나의 씨앗으로부터 시작해서 모종을 키우는 과정이 여전히 신기한 것이 많아요. 작물 키우면서 텃밭에서 뭔가를 만나거나 내 식탁에 내가 키웠던 작물들을 골라서 먹는 기쁨과 감사함이 있어요.


지리산방랑단의 대표적인 활동인 성 다양성 축제도 있어요. 축제가 벌써 4회째를 맞았는데 감회가 어떤가요.

처음에는 함께 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이슈를 외부에 알리고 싶은 욕구도 있었던 것 같아요. 공동체 안에 살 때 성 소수자의 존재에 대해서 침묵하는 분위기가 있어 거기에 반발하는 마음이 일차적으로 있었거든요. 다양한 존재들을 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묵인하는지 일종의 저항심이었죠. 도시에서는 관련 이슈가 터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일 때마다 저는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있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져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고요.

처음 1회를 진행하고 나서는 반응이 뜨거웠어요.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랍고 고마웠고요. 공연이나 장소도 첫 회가 제일 열악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다 이해하면서 같이 만들었어요. 그때 저희가 겨울을 보낼 집을 구해야 했는데 마을 분들이 돈 봉투를 보내주시고 어떤 분은 자기 집을 내어줄 테니 고쳐서 살라고 하셨어요. 몰랐던 이웃들을 많이 만나게 됐죠.

 2회는 코로나로 축소 진행했지만 대체로 한 회 한 회 거듭할수록 행사 규모가 점점 커졌어요. 오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요. 축제가 끝나고 저희가 좋아하는 비건 식당에 갔는데 재료가 다 소진됐다는 거예요. 그때 메뉴 하나 시켜서 겨우 나눠 먹고, 슬프지만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올해는 새로운 터전인 구례에서 하니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우리끼리 노는 느낌으로 하자고 했는데 판이 더 커졌어요. 거의 일주일 동안 축제하는 기분이었어요. 재미는 있었지만 큰 규모의 행사를 넷이 진행하니 지치기도 했는데요. 저희가 최우선으로 두고 싶은 건 '우리 마음이 다 괜찮은가'예요. 누군가에게 부침이 되고 힘들다면 하지 말자, 이런 이야기도 오갔죠.


방랑단이 잃고 싶지 않은 색깔이나 가치가 있을까요.

방랑단의 대표 활동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환경 관련해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 한편으로 성 다양성 축제를 4회째 해온 친구들이 여기 안에 있으니까 그걸로 기억해 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두 가지가 우리의 특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환경과 퀴어, 두 운동의 영역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저희는 에코 페미니즘이라든지 생태주의와 퀴어 및 페미니즘을 계속 엮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를 바탕으로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을 응원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보살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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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단에게 지리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지리산을 만나고 새롭게 태어난 것 같아요. 지리산에 살기 전과 후의 삶이 정말 많이 달라서요. 몇십 년간 익숙해 왔었던 관계, 삶의 방식, 시선 등 모든 것으로부터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을 느꼈어요. 예를 들면 도시에서 토마토를 먹으면 토마토는 그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일 뿐이었는데, 지리산에 온 이후에는 저와 너무 많은 곳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인 거예요. 땅하고 맺고 있는 관계도 있고 제 몸과도 연결되고 제 이웃들과도 연결되고.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안식처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상글이 말한 대로 서로 연결감을 느낄 때가 많았고요. 도시에서는 내가 하나의 세포로 뚝뚝 떨어져 단절되어 있고 또 이겨내야 하고, 경쟁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지냈었던 것 같거든요. 지리산에 오고부터는 다른 방식을 배웠어요. 주위의 많은 보살핌이 있었고 가난하지만 이대로 좋다는 감각을 많이 느껴요. 체득이라고 하잖아요,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낀 기분요. 직접 몸소 얻은 감각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역 살이를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요.

실제로 제 친구가 성 다양성 축제하는 동안 한 달 살고 이번 달에 구례로 이사를 와요. 예전부터 오고 싶어 했는데 인프라가 없을 것 같아서 못 오던 친구였거든요. 친구가 풋살을 하고 싶다는데 저희는 ‘풋살…? 풋살은 못 하겠다’라고 하던 찰나, 갑자기 상글이 아는 분이 구례에 여자축구단이 있다고,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라는 거예요. 저도 지역에서 춤춘다고 몇 명 모여 있다길래 일주일에 한 번 춤추러 가는데요, 도시였다면 일단 댄스 학원을 끊어야 하니까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해’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겠죠. 여기는 그냥 나보다 조금 잘하는 사람, 아니면 나랑 비슷하게 관심 있는 사람을 그냥 모아서 하면 돼요. 보통 ‘시골에서 뭐 하지?’ ‘나 뭐 먹고 살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오면 할 게 많아서 정말 바빠요.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채우는 일들로 바쁘니까 그게 정말 행복해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귀촌하고 싶거나 지역사회에서 무언갈 해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저희가 해 주고 싶은 말은, ‘일단 와 봐, 그러면 다시 못 돌아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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