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귤껍질 님_#4 하고픈 일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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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

오도이촌ㅣ브런치 '엄마의 집짓기' 작가ㅣ앱 서비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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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고픈 일이 있는 곳

“엄마는 시골에서는 안 살 거야. 서울이 메인이지.”

 

퇴직하면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는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를 그만둔 뒤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연고는 천안 도심에 사는 동생 뿐이었던 아빠를 걱정했다. 하지만 친구 부자인 아빠답게 옆집, 뒷집 두루두루 친해져 동네 사람들과 매일 같이 산도 가고, 농사 팁도 구하고, 막걸리도 마시며 누구보다 시골 생활을 잘 적응해 갔다.

 

서울집에서 아빠는 약속이 없으면 집안일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일과가 대부분인데, 천안집에서는 누구보다 공사다망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어릴 적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이라는 환경을 다시 마주하고 그 때로 돌아가는 느낌이 아빠를 다시 젊게 하는 듯했다.

 

하루는 옆집 뚝딱이 아저씨네에서 모종을 얻고, 아빠와 마당의 닭장을 구경했다. “닭장이 아니라 무슨 닭 호텔이야.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시는지 몰라.”라는 엄마의 말처럼 가축을 어떻게 기르고 관리하는지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닭들이 아주 호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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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기도 하고, 냄새도 나는 것 같아 닭장을 지나가려는데 아빠가 닭장 앞 의자에서 “여기 앉아서 좀 더 구경해 봐. 얘네들 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라고 했다. 닭 대신 아빠를 구경하며 더 앉아 있었다. 아주 흐뭇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아빠를 보며 아빠는 천안집에서 더욱 반짝반짝 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서울을 더 좋아하는 엄마는 아빠와 달리 자신만의 시간이 더 소중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막상 만나면 재밌게 어울리지만 친구를 먼저 찾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엄마에게 천안집은 할 일이 없어 심심하고,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할 것 같은, 집이 아닌 쉼터였다.


하지만 퇴직 후 주말마다 천안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항상 사부작사부작 할 일을 찾아내는 엄마답게 그곳에서도 일을 찾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천안집은 점점 두 번째 삶을 디자인하는 공간으로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어느 날 “오늘 하루 종일 풀 뽑기를 하는데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았어. 비가 오면 풀들이 힘이 빠져서 히잉 하는 느낌으로 노곤해져 있는 것 같아. 그걸 쏙쏙 뽑아버리면 왠지 기분이 좋고, 잘 뽑혀서 재밌어.”라며 엄마는 풀 뽑기도 일종의 명상이라며, 다음에 오면 꼭 같이 뽑자는 말을 나에게 몇 번이나 했다.

 

이즈음부터 엄마가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집단이든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할 때 더 소속감이 들기 마련인데 엄마는 이곳 천안 광덕산에서 할 일이 하나둘씩 생기며 이곳에 대한 소속감도 늘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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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기라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요즘 부모님은 그냥 천안 사람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집에 와도 몇 시간만 머물고 천안으로 다시 돌아가신다. 서울집의 비중이 두 분에게 나날이 적어지며 나와 동생은 독립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인들이 부모님과 사냐고 물으면 “우리 집은 부모님이 독립해 버렸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데, 이 말을 할 때 은근히 기분이 좋다. 자식이 독립해서 자기 일을 하고자 할 때 부모님이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듯, 부모님도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좋고, 나도 나다운 삶을 일궈가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또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곳, 나를 나답게 하는 곳, 힘들어도 재미있는 경험들이 있는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편안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나도 글을쓰면서 부쩍 천안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자주 가고 싶고, 궁금하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장소들을 많이 찾고, 그 공간들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는 순간들이 삶에서 계속 있기를 바란다. 어느새 세상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모두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스스로를 키우고, 내가 보듬어주고 싶은 공간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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