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로컬청년농부





시골에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시골살이를 꿈꾸다가도 ‘일’을 생각하면 머뭇거려지게 됩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시골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시골 직업 (줄여서 '당알시')? 에서는

나만 알고 싶은 요즘 시골 직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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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강원도 영월에서 토마토 농장인 ‘그래도팜’을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 파머’ 원승현입니다.

 

그래도팜은 어떤 회사인가요?

저희는 농업 생태계의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고자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모두 다루고 있어요. 예를 들면 농장 현장에서는 수확 시기가 되면 인사이트 트립이라는 일종의 체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농산물 원물과 가공품을 소개하고, 본질적인 토양과 씨앗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도슨트 투어 형태입니다. 농산물 외에도 저희의 철학을 담은 굿즈도 개발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토마토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자 스무 가지 레시피와 토마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만간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인데요, 농장을 넘어 도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에게 다양한 토마토가 왜 필요하고, 땅을 가꾸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토마토의 맛’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총체적인 농업 관련 브랜딩 회사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와. 농사에서 점점 분야를 확장하고 계시는군요!

사실 제가 원래는 농사짓는 행위에 더 중점을 두었었어요.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고, 농업 자체를 배우는 데에 집중했지요. 그러다 작년에 몸이 안 좋아지면서 농장일을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워졌어요. 올해 일손을 도울 직원을 새로 채용하게 되면서 저는 농사 외에도 우리의 목적과 가치를 다른 분야에서 전달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기획하는 일이 늘어난 거죠. 원래는 저희 농장모델 하나의 사례를 잘만들어 보여주자는 방식을 고수했었다면, 지금은 전달하는 매체를 더 찾게 된 셈이에요. 예를 들어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토양 이야기는 굉장히 생소하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팝업 전시, 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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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는 서울로도 진출하시려고 하나요?

아니요. 아직까지는요. 오히려 로컬에 더욱 집중하려고 해요. 오랜기간 가꾼 토양을 도시로 옮기기는 힘드니까요. 지금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사람들을 로컬로 찾아오게끔 하기 위한 유인장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영월에 있는 그 농장에 가보고 싶더라”하고 목적지가 농장이 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어요. 중장기적으로 제가 그리는 미래는 그래도팜이 하나의 인증마크가 되는 것이에요. 지금처럼 저희가 직원들에게 교육한 후, 내보내면 다른 품목일지라도 저희의 농법으로 생산하게끔 하는 방식이에요. 씨앗을 저희가 재배 중인 것을 활용한다든지, 퇴비장을 만든다든지 농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죠. 약간 브랜드 프랜차이즈랄까요(웃음). 그렇게 되는 것이 목표예요. 그러면 그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그래도팜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유통하는 방법도 생기겠지요. 농산물을 가공해서 f&b를 할 수도 있겠고요.

 

생산자를 중심에 둔 브랜차이즈(브랜드 + 프랜차이즈)군요!

맞아요. 브랜드는 저희가 기획해서 이끌고, 여기에 소속된 농부들이 생기는 거죠. 어찌 됐든 저희는 농업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팀이에요. 농업 기술력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확장해가려고 하고 있어요. 예전에 일본의 다베루 통신 모델을 차용하고 싶어서 실제 현지에 가본 적이 있어요. 그때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다베루 통신같은 모델의 대상자가 될 만한 생산자를 찾기 어려웠다는 거예요. 취재를 할 만한 농부가 없던 거죠.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그래서 저희는 아예 처음부터, 생산과 농업기술이라는 태생을 만들어 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어요.

 

직원들을 키워내는 일이군요. 정말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 하는 일처럼 들려요.

길다면 긴데, 그렇게 긴 여정은 아닐 수도 있어요. 현재 저희가 교육 기간 3년으로 잡고 있고요, 3년 뒤부터는 각자의 농장을 꾸려 생산할 수 있게끔 계획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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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현재 그래도팜에는 직원은 몇 분 정도 있나요?

두 분 계시는 데요. 올해 그분들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해보고 내년에 본격적으로 실행하려고 해요. 제 욕심으로 무리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천천히 구상하고 있어요.

 

로컬에서 농사짓는 일의 장단점 좀 소개해주세요.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에 있어 장단점이 있을 때 고민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청년들이 보기에 로컬일자리는 단점만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첫째가 열악한 정주 조건, 그다음이 낮은 임금이겠지요. 만약 현금순환이 좋고 수익창출원이 확실하면 도시보다 더 좋은 주거 여건을 갖출 수 있을 텐데 임금부터가 열악해요. 그러니 좋지 않은 정주 조건도 떠안아야 하고, 낮은 임금도 떠안아야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곳이 가장 힘든 법이잖아요. 아무리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해준다고 한들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 더 바라게 되거든요. 임금을 조금 더 높이는 방법이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앗, 그럼 지역에서 좋은 인력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흔히 말하는 ‘시골 생활은 여유롭다’라는 말에도 사실 저는 크게 공감이 안 돼요. 오히려 도시보다 더 여유가 없는 게 농사예요. 농사지으면서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을 저도 잘 못 봤거든요. 농업인인데 돈을 잘 벌고 있다는 것은 대개 유통업자와 가공업자죠. 그 업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생산만 해서는 아주 큰 부농, 대농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에요. 대부분 농부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요. 주 4일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오늘날에, 농부는 주 7일을 일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누가 농업 일을 하고 싶겠어요. 차라리 지금 우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대신 우리가 하는 일의 비전과 재미를 말해야 지속할 수 있다고 봐요.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분도 원래 미국에서 건축 디자인을 하셨던 분인데요, 제 책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를 보고 먼저 이메일이 왔었어요. 만나보니 잘 맞아서 함께 일하게 되었죠.

 

그렇군요. 그래도팜 일의 매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실제로 농산물 시장 자체가 치킨 게임이에요. 이 시장에서 독창적인 제품과 직접컨트롤 가능한 유통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차별점 같아요. 이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게 저희 일의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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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팜의 비전이 궁금해요.

궁극적으로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현재 저희가 실험하는 모델은 같은 품목의 농산물이어도 판매단가를 높게 책정을 하는 방식이에요. 두 작기는 해야 할 것을 한 작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게끔 해서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농사는 6개월 짓고, 남은 6개월은 다른 일을 하는 반농반X 삶을 사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간단하게 지금 내가 1000원에 팔고 있는 것을 2000원에 팔 수 있도록 하면 돼요.


유기농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라는 단어가 나와 깜짝 놀랐어요.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유기농업이 기본 뼈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사실 국내 농산물 시장에서 단순히 유기농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차별성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요. 대개 관행농을 하다가 친환경 농업으로 급격하게 전환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전반적인 유기농업의 흐름 자체가 ‘무’ 투입, 화학 성분의 ‘불’검출 등이 기준이 되었거든요. 그러면 생산물 자체에는 변화가 크지 않아요. 소비자들이 맛의 차별성을 느껴서 유기농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건강하다는 믿음으로 구매를 하게 되죠. 하지만 토양 구조를 건드리게 되면 실제로 고객들이 혀끝에서 유기농산물 만이 가진 맛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어요. 그게 더 큰 수익 창출로 이어지고, 농부의 경제적인 여유를 만드는 데 훨씬 유리하죠.


사실 어떤 면에서는 대표님이 워낙 다재다능하다 보니 가능한 일일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확실히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는 해요. 디자인을 전공했고, 부모님이 80년대부터 유기농업을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초반에는 사명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브랜차이즈 개념처럼 앞으로는 제가 브랜드 중심 역할을 함으로써, 브랜딩 역량이 없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을 구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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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팜의 조직문화는 어때요?

대표 입장에서 말하기는 굉장히 부끄러운데(웃음). 솔직히 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장 좋은 것은 휴식이잖아요. 그런데 농장 일이라는 것은 그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에는 여름 시즌에는 치열하고 가을 겨울에는 여유가 있어요. 현재 계약 관계는 주6일제에요.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방식이죠. 그리고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겨울에 한 달을 유급 휴가를 줘요. 그러니 여름에 일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일단 인원이 워낙 소수다 보니 가족같이 지내는 부분이 크고, 작기가 마감했을 때는 작은 답례를 드리기도 해요. 저번에는 싸이 콘서트를 같이 다녀 왔어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 농장 특징이 농장 일만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기획일을 병행해요.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농장에 들어가 농사일하고 어떤 날은 팝업 전시 기획같은 프로그램 기획 일을 하죠. 오히려 사무실에만 있는 것보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생긴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독립해서 자기만의 농장을 운영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기획과 생산 일이 병행하게 될 거란 말이죠. 그래서 훈련 개념도 있어요. 일반적인 귀농·귀촌 교육원에서는 농업을 가르쳐주긴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짧아요. 여기서는 몸에 체화시킬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죠.


도제식 교육을 받는 느낌이군요.

그렇죠. 그런데 농사는 3년이라고 해봐야 1년에 2작기를 하더라도 6작기 밖에 지어보지 않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이 농사는 되게 가볍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농사나 지어볼까?’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저는 8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농업에서는 인턴도 못 벗어난 기분이에요. 농사라는 게 ‘10년 했으니까 이제 나 안다’라고 말하기도 어렵거든요.


쉽지 않네요. 어느덧 8년째 농부세요. 지속하게끔 하는 대표님의 동력은 뭔가요?

동력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오기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농업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선입견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껴요. 그리고 인제야 조금씩 농업 생태계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귀농·귀촌 박람회에나 농업박람회처럼 농업에 관한 관심도 점차 늘어나고요. 조금만 있으면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실제로 와닿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겠죠. 그래서 제 동력은 오기와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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